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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준 고양시장
무거운 배낭을 메고 지역 곳곳을 살피던 시절이 있었다. 많은 일을 해도 돌아보면 늘 제자리인 것 같았다. 쉽게 좌절하지는 않았다. 이상과 현실이 격돌하는 모든 문제들은 늘 해결하기 어렵지만, 정치란 ‘다른 생각들을 모아 더 큰 다름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진짜 정치’를 갈망했던 절실함은 시간이 흘러 ‘사람’과 ‘정의로움’이라는 민선 7기의 시정철학이 됐다. 그 철학을 실천하는데 기본이 되는 일은 바로 소통이었다. 시민과의 소통은 물론 공직 내부 목소리를 듣는 일도 중요했다.

 권력은 시민에게 있으며, 시민이 응당한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돕는 일은 공직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취임 직후 가장 먼저 기획한 것은 39개 동을 방문하는 일이었다. 7월 중순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31개 동을 방문했다. 민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생활 SOC(사회간접자본) 관련 건의 사항이었다. 서류상으로도 충분히 검토가 가능한 내용들이지만, 중요한 것은 한 줄로 기록된 민원내용 뒤에 숨겨진 시민들의 현실을 체감하는 일이었다. 8년간 경기도의원으로 일하며 지역 현안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때로는 나의 경험과 지식이 무용하게 여겨질 때도 있었다. 단순히 민원을 해결하는 것을 넘어, 구조적이고 만성적인 문제점을 찾아내는 일이 중요하다. 그러려면 시민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야 한다. 눈높이를 맞춰야 한다. 지금까지 동 방문을 통해 접수된 주민 건의사항은 421건. 각기 다른 민원이지만 결국 가리키는 곳은 하나였다. ‘고양시는 어떤 도시가 돼야 하는가?’

 ‘작은 혁신’이 쌓여 큰 변화를 이룬다. 민선 7기 고양시는 시작부터 이례적이라는 평가를 자주 받았다. 상대적으로 길었던 인수위원회, 추경예산안 자체 삭감을 시작으로 민원 처리 기간 단축을 포함해 300여 개가 넘는 민원처리 규정을 바꾸기까지, 소소하지만 시민을 중심에 둔 정책들을 발표해 왔다.

 취임 초기, 정책의 방향성을 선명하게 결정한 것이 시작이었다면 새로운 추진력으로 삼고자 하는 것은 바로 각 실·국·소 등 부서들과 내부적 소통이다. 매일 이른 아침마다 부서별로 정책간담회를 갖고 고양시의 바람직한 도시상에 대해 토론하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깊이 고민하는 체계를 다지고 있다. 동시에 담당부서에게 더 많은 권한과 책임을 부여하고 있으며, 각 부서들이 단체장의 의지보다 시민 권력을 의식하기를 주문하고 있다. 아직은 초기이기 때문에 도시의 미래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정확히 한 데 모으지는 못했다. 그러나 적어도 ‘성장일변도였던 도시의 발전 방향에 대해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는 것’에는 가까워졌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개발과 성장의 소용돌이를 거치며 어떤 오류가 생겼는지, 서로가 서로에게 어떤 불편을 주었는지, 그 모든 오류와 불편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상황을 우리의 권리라고 부르는 것이 옳은 일인지. 이러한 물음들은 정책으로 피어나고 있다. 필요 없으나 관례적으로 실시하는 사업을 재검토하고 과감히 정비하는 일, ‘동장 직접선출제’처럼 행정의 새로운 변화를 유도하는 일, 주거 확대 대신 자족기능 확보에 맞춘 개발을 계획하는 일, 남북 평화시대의 표준을 세우는 시범도시를 제안하는 일, 그리고 지자체 최초로 ‘파리기후협약’ 준수를 위한 온실가스 감축 계획을 수립하는 일 등이 그렇다. 반성도 필연적으로 뒤따랐다. 우리는 주어진 환경을 돌이킬 수 없이 훼손해왔다. 미래세대에게 부채를 떠넘기고 있다. 이 부분을 인정하고 나니 지속가능한 발전의 답이 보이기 시작했다. 환경과 생태가 어우러진 도시야말로 지속가능성을 담보한다.

 이러한 원칙을 토대로 민선 7기 고양시는 사람중심의 정책을 펼 수 있는 새로운 공간들을 많이 만들어 가려고 한다. 그러다 보면 우리 모두가 어느덧 고양시를 넘어 사회 전반을, 현재를 넘어 미래를, 정의로움과 인권을 향하고 있지 않을까. 그리고 언젠가는 "늘 제자리라고 느꼈으나 사실 우리는 한걸음씩 진보하고 있었다"라거나 "더 큰 다름, 그것은 다름 아닌 ‘변화’다"라는 말을 서로에게 해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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