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전원합의체가 1일 종교적 신념에 따른 입영 거부는 ‘정당한 병역거부 사유’에 해당해 처벌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이에 따라 같은 혐의로 재판을 받는 930여 명에게도 곧 무죄가 선고되고, 확정 판결을 받은 이들도 조만간 구제를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판결은 두 가지 측면에서 유감스럽다. 우선 현실을 고려치 않은 절차적 부실에 대해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처럼 대체복무제도가 마련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판결이 이뤄지면 ‘대체복무도 하지 않은 채 병역이 면제되는 사태’가 초래될 수 있다. 이러한 과도기적 혼란과 악용 가능성의 방치는 ‘의무의 평등’이라는 헌법적 가치는 물론 ‘특정 종교에 대한 특혜금지’ 원칙까지 훼손한다. 그래서 헌법재판소도 ‘대체복무제를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 조항은 헌법불합치’라는 결정을 내리면서 조속히 대체복무제를 만들라고 요구했던 것이다.

 ‘양심의 진정성을 검사가 판단’하는 부분도 주관적이고 자의적이라는 비판이 크다. 무슨 수로 병역거부자의 인생 전체를 다 들여다 볼 것이며, 자칫 조사가 과도할 경우 제기될 사생활 침해 논란은 어떻게 할 것인지 궁금하다. 정작 문제는 국가 안보보다 ‘종교적 신념, 양심적 자유’에 헌법상 우월한 가치를 부여한 점이다. 세계에서 가장 전쟁 발발 위험이 높은 지역에서 살아가는 대한민국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국방의 의무를 지고 있다. 이런 이유에서 양심적 집총 거부는 군형법 제44조 항명죄로, 입영거부는 병역법 제88조 병역기피죄로 처벌돼 왔으며 대법원도 양심적 병역 거부에 대해 일관적으로 범죄의 성립을 인정해왔다. 정교분리 원칙 측면에서도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고, 대법원 코드가 바뀌자 판결이 정반대로 뒤집혔다. 국가 안보와 국민의 생존권을 더 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나라의 운명이 어떤지는 가까운 오백년 조선의 역사만 들춰봐도 알 수 있다. 북한은 우리가 갖지 못한 핵 미사일과 생화학 무기는 물론 몇 배의 특수전·정규군(약 120만 명) 인력까지 보유하고 있다.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 국가의 질서와 국민의 안녕을 지키기는커녕 혼란과 불평등, 국민의 생명까지 위험하게 할 수 있는 사안을 너무 성급하게 결정했다는 점에서 유감스럽기 그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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