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연.jpg
▲ 정승연<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제1, 2차 세계대전의 주전장(戰場)은 유럽이었다. 수많은 유럽 사람들이 희생됐고 국토는 폐허가 됐다. 하지만 아픈 상처를 교훈 삼아 유럽의 지도자들은 현명한 선택을 했다. 이들은 다시는 유럽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게 만들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공동으로 행동에 나선 것이다. 그 중심에 당시 프랑스 외무장관이었던 로베르 쉬망(Robert Schuman)이 있었다.

 평화와 번영의 유럽을 만들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가를 고민했던 쉬망은 당시 경제발전의 핵심요소였던 석탄과 철강을 중심으로 적국이었던 프랑스와 독일이 손잡게 만들어야 한다고 믿게 됐다. 이렇게 해서 1950년 쉬망은 프랑스·독일 석탄·철강공동시장 설립 구상을 밝혔고, 이후 이 구상은 이탈리아, 영국 등 12개국이 참여하는 경제공동체로 발전해서 오늘날 EU의 토대가 됐다.

 한반도가 속해 있는 동북아는 어떠한가? 과거 동북아는 세계의 중심이었다. 이미 13세기에 세계 땅의 절반 이상을 정복한 몽골의 칭기즈칸의 역사가 너무 오래 전의 일이었다고 치부한다면, 18세기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중국이 세계경제의 중심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후 산업혁명에 성공한 유럽 국가들과 미국이 세계질서를 주도하면서 동북아는 세계의 변방으로 밀리게 됐다. 그 와중에 아시아를 벗어나 구미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려고 애쓴 일본이란 나라가 있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 열강들의 제국주의 세력싸움 속에서 중국은 유린됐고 조선은 국권을 상실했다. 이후 조선은 국권을 회복했지만 다시 미국과 소련 중심의 냉전 도래와 함께 남과 북이 분단된 채 오늘날에 이르렀다. 앞으로 과거 동북아의 영화는 다시 살아날 것인가? 일본이 여전히 경제대국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고, 중국이 급부상해서 G2로 불리는 것을 보면 그렇게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동북아가 평화와 번영의 세계 질서를 주도해가기 위해서는 한반도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안 된다. 한반도에 평화와 번영이 찾아왔을 때 비로소 동북아는 세계의 중심축으로 우뚝 설 수 있을 것이다.

 이제 한반도에 봄은 오는가? 분명히 그 기운은 퍼지고 있다. 지난 1년간 분단의 당사자인 남과 북이 노력한 결과다. 그러나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북한은 핵폐기라는 약속을 지켜야 하며, 한반도의 안보와 경제에 큰 영향력을 행사해온 미국도 적극 나서야 한다. 동북아의 큰손인 중국과 일본도 한반도 분단체제 극복에 협조할 의무가 있다. 유럽이 증명해 왔듯이, 동북아에 평화와 번영을 가져오는 가장 강력한 수단은 경제협력의 강화가 될 것이다. 즉 경제공동체 구축을 향해 나아갈 때 비로소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이 담보될 수 있다. 경제공동체의 수단은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한반도 철도와 도로 연결이 될 수 있고, 러시아 천연가스 도입을 통한 에너지 협력이 될 수도 있다. 또한 북한의 개발이나 몽골의 신재생에너지 기지 건설에 각국이 참여할 수도 있다. 이러한 동북아 경제공동체 추진에 있어서 한반도 경제협력은 필수요건이 된다.

 남과 북의 신뢰에 기초한 한반도 경제협력의 강화 없이는 동북아 경제공동체가 구축될 수 없다. 동시에 한반도 경제협력은 동북아라는 틀 속에서 추진돼야 그 효과가 극대화됨은 물론 지속가능성 또한 담보될 수 있다. 미국은 북한의 핵폐기가 선행돼야 경제협력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한반도에 평화가 보장돼야 번영이 가능하다는 논리는 맞는 말이다. 그런데 이 논리의 순서를 바꿔 봐도 모순되지 않는다. 즉 남과 북이 공동으로 번영할 때 비로소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고, 이는 동북아로도 확대된다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에 쉬망을 비롯한 유럽의 지도자들이 믿었던 것은 경제를 통한 공동번영이 유럽의 평화를 가져온다는 것 아니었을까?

 평화와 번영은 어느 것이 먼저라고 말할 수 없다. 동시에 추구돼야 하는 것이다. 번영이 동반되지 않는 평화는 만들기 어려울 것이고 찾아온 것처럼 보여도 오래 지속되기 어려울 것이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나서려는 지금, 동북아라는 틀 속에서 남과 북의 경제협력 또한 바로 시작돼야 한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