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사(自然史) 유물 수천 점이 인천의 한 학교 교실 한켠에 쌓여 곰팡이 슬고 있다. 학교 법인 측은 수차례 기증 의사를 밝혔지만 인천시는 2년째 장소조차 마련치 못하고 있다. 무관심한 행정이 시민 품으로 돌아갈 5천여 점의 자료 소실로 이어질 우려가 나온다. 지난 2일 남동구 문일여자고등학교 4층 한 켠 교실 안.

이곳에는 포유류부터 조류, 어류 등 자연사 자료들이 비닐에 감싼 채 곳곳에 쌓여 있다.

▲ 2일 남동구 문일여자고등학교 한 교실에 조류 박제품을 비롯한 자연사 자료들이 쌓여있다. 문성학원은 이 자료들을 인천시에 기증할 의사를 밝혔다.
▲ 2일 남동구 문일여자고등학교 한 교실에 조류 박제품을 비롯한 자연사 자료들이 쌓여있다. 문성학원은 이 자료들을 인천시에 기증할 의사를 밝혔다.
한국에서 더는 볼 수 없는 호랑이, 곰, 곤충과 나비까지 포함하면 문성학원이 보유한 수집품은 1만여 점에 달한다. 이 중에는 하늘다람쥐, 산양, 팔색조, 독수리 등 천연기념물 20여 종도 있다. 현재 문화재청이 천연기념물 등록·분류를 진행하고 있을 만큼 가치가 높다. 박스 안이나 비닐포장 속에 잠든 이 수집품들은 몇 년 전부터 인천시민에게 개방하려 했던 자료다.

문성학원은 2016년 말께부터 자료 전체를 인천시에 기증하겠다고 했다. 인천금융고등학교(옛 문성여상) 내에서 1983년부터 운영했던 자체 전시관이 학교 이전으로 문을 닫게 돼서다. 시가 자연사 자료를 관리하면 공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데다 활용도도 높아질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시는 지난해 초 전시시설 조성을 검토하다 실무선에서 유야무야했다. 천연기념물을 문화재청에 등록해야 하는 등 절차가 복잡한 데다 공간도 마땅치 않다는 이유였다.

송도 달빛공원 인근 도서관이 후보지로 거론됐으나 전시관을 조성하기에는 좁을 것으로 판단해 무산됐다. 그 이후 한참을 표류하던 이 사안은 최근 부서를 옮겨 재검토되고 있다. 문제는 관리의 시급성이다.

갈 곳을 잃은 자료들은 지난 2월 인천금융고가 빠져 나가면서 빈 교실로 옮겼으나 관리가 여의치 않다. 매년 해야 하는 소독부터 어렵다 보니, 수십 년을 모아온 물품이 상할 우려가 크다. 자료 중에는 시민들이 함께 수집한 자료도 상당수 포함돼 보존대책이 시급하다. 1982년 소래포구 어부들이 잡아 트럭에 싣고 온 철갑상어, 1980년 문성여상 생물반 학생들이 채집한 콩풍뎅이를 비롯해 학부모들이 하나 둘 기증한 물품이 많다. 인천시 시조인 재두루미 박제품은 1987년 시가 조형물을 제작하기 위해 빌려 가기도 했다.

문일여고 관계자는 "학교에서 운영했던 전시관은 우리나라 3대 자연사 박물관이라 자신할 만큼 종(種)다양성을 볼 수 있는 자료를 많이 확보했다"며 "교육을 위해 애썼던 설립자의 취지만 알아준다면 열린 장소에서 많은 시민들이 볼 수 있게끔 공간이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홍봄 기자 spring@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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