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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사연 수필가
# 처가살이 농작물

오늘 모기 퇴치용 에프킬러를 몸에 뿌리며 고구마 일부를 캤다. 지난해보다 배가 넘는 양의 고구마를 수확했다. 지난해까지는 매실나무 사이사이 공간에 처가살이하듯 심었는데 올해는 아무 나무도 없는 맨 땅에 심었기 때문이다. 호미로 땅을 파헤치자 반갑게 고개를 내미는 붉은색 고구마 중엔 근원을 알 수 없는 노란색 뿌리의 실타래에 포승처럼 묶여 있는 놈도 있었다. 이미 지난해 몸통을 잘라버렸지만 아직도 땅속에서 드센 생명을 이어가고 있는 뽕나무의 뿌리다. 맨 땅의 고구마도 이럴진데 매실나무 사이사이에서 처가살이했던 고구마는 오죽 숨이 막혔을까. 순간 처가살이 설음은 사람뿐 아니라 농작물에게도 스트레스를 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겉보리 서 말이면 처가살이를 안 한다’는 옛말이 떠오른다.

 보리는 성숙 후 곡식입자와 껍질이 밀착돼 잘 분리되지 않는 겉보리와 밀처럼 잘 떨어지는 쌀보리가 있다. 1L의 무게도 겉보리는 600~700g인데 쌀보리는 800g가량이니 겉보리의 질이 훨씬 떨어진다. 처가살이 설움이 오죽하면 그런 형편없는 겉보리 서 말만 있어도 웬만하면 독립을 하겠다고 그랬을까. 물론 애당초부터 매실나무 사이에 심은 고구마가 시원찮은 것은 아니었다. 해가 갈수록 매실 묘목 줄기가 팔뚝처럼 굵어지는 만큼 뿌리도 더 촘촘히 사방으로 거미줄을 쳐 고구마가 자리 잡을 수 없다는 사실을 미처 생각지 못한 것이 불찰이었다. 철부지였던 처남과 처제의 머리가 커짐에 따라 사사건건 부딪치고 날이 갈수록 장인장모의 잔소리를 능가한다는 현실을 깨닫지 못한 데릴사위의 속 끓는 심정도 이랬을 것이다. 매실나무 사이의 공간 자투리땅이 아까워도 다음부터는 절대로 농작물을 심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 선산의 길고양이

 나를 업어 키우신 할머니의 제사상에 올릴 제물을 하나라도 더 챙기기 위해 고구마를 캐고 대추와 감을 따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엎드려 전을 부칠 부추를 가위로 잘랐다. 당시에는 몰랐는데 집에 도착해 트렁크를 여는 순간 허리와 대퇴부 고관절에 통증을 느끼며 주저앉을 뻔했다. 아내의 부축을 받고 지팡이를 의지해야 겨우 움직일 수 있었고 납골묘 앞에 주저앉은 채 절도 할 수 없으리만치 통증이 심했다. 견디다 못해 통증클리닉을 찾아갔고 주사 한 방으로 주사실에서 혼자 걸어 나왔다. 처방약까지 복용한 덕분에 타이완(臺灣) 대남시(臺南市)약사회 초청 합창 공연을 무사히 마치고 귀국해 그동안 미뤘던 서창동 소재 선산 벌초를 시작했다. 납골묘 봉분 주위는 추석 전에 종친회 이사들과 벌초를 했고 어제부터 주변 야산의 잡초와 나무를 타고 올라가 질식시키는 칡덩굴을 제거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하지만 진통제를 장기간 복용한 탓인지 속이 쓰리고 아파 자다가도 제산제를 복용해야 하는지라 요즘은 누룽지 죽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다.

일 욕심에 어제는 오후 4시에야 귀가해 점심식사를 했기에 오늘은 보온밥통에 누룽지 죽을 챙겨달라고 아내에게 당부했다. 선산에 들어서자 낯선 길고양이가 웅크린 채 먹이 사냥에 열중하느라 인기척에도 관심이 없다. 예초기 기름이 떨어질 무렵 연료통을 채우고 앉은 김에 점심식사를 시작하는데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는 눈총을 느꼈다. 주변을 둘러보니 아침에 보았던 길고양이가 저 건너 나뭇가지에 몸을 숨긴 채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모르는 척 식사를 한 후 남은 김치찌개를 잔디에 쏟아 붓고 반찬통에 누룽지 죽을 덜어 놓았다. 선산에서 딴 연시를 후식으로 먹고 산 아래로 내려가 예초기 작업을 다시 시작하며 흘낏 돌아보니 길고양이가 반찬통을 비우고 있다. 길고양이가 사라진 후 다가가 보았다. 누룽지 죽은 남겼는데 설마 먹을까 싶었던 김치찌개 국물은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핥아 먹었다. 아마도 신 김치를 좋아하는 내 식성을 닮았나보다. 이럴 줄 알았으면 김치찌개에 들어있던 돼지고기 한 점이라도 남겨줄 걸 하는 아쉬움에 한동안 일손이 잡히지 않았다. 때늦은 가을 하늘에 먹구름 한 무리가 갑자기 몰려들더니 겨울을 재촉하는 빗방울을 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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