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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노훈 경기본사 경제문화부장
몇 개월 전의 일이다. 친인척(親姻戚) 중 한 명이 시술을 위해 입원을 했다. 어르신이기 때문에 바쁜 와중에 잠깐 모셔다 드렸고, 배우자와 함께 입원 수속을 밟는 것을 보고 나왔다. 그런데 다시 연락이 왔다. 배우자가 고령이기 때문에 젊은 친인척이 소위 말하는 ‘동의서’에 서명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이가 없었다. 의료법상 보호자를 고령이냐 아니냐로 특정하지 않았고, 고령이라 하더라도 사지와 인지 모두 멀쩡한 분을 두고 안 된다니. 혹여 의료사고나 다른 만일의 사태를 염두해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술은 실패로 돌아갔고, 시술 아닌 수술을 해야 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얼마 뒤 다시 재입원을 해야 했고, 역시 그때처럼 모셔다만 드리고 나왔다. 그런데 또 연락이 왔다. 이번에는 집도의가 직접 나서 젊은 친인척이 서명하지 않으면 수술을 하지 않겠다는 내용이었다. 어이가 없는 것을 넘어 기가 찼다. 집도의와 직접 대면했다. 집도의의 요(要)는 애초부터 어르신과 상담을 할 때 치료과정에 대한 커뮤니티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 젊은 친인척이 있어야 한다고 동의를 구했다는 것이다. 어른신께 여쭈니 그런 대화가 오갔다고 인정했다. 몰랐던 일이니 만큼 사과하고 대신 서명을 했다.

 그래도 찜찜함을 지울 순 없었다. 엄연히 의료법이 있고 그에 따라 따졌을 뿐인데…. 집도의의 말처럼 순수하게 그런 의도라면 기분 좋게 받아 들이겠지만, 그간의 과정이 그렇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그리고 수술 당일, 보호자 대기실을 벗어나 잠깐 밖에 나와 있을 무렵 수술이 끝났고 집도의가 찾는다는 연락이 왔다. 어르신의 배우자가 분명 대기실에 있었건만 배우자에게는 설명할 수 없다고 한다는 말과 함께. 십분 안에 도착했지만 집도의는 보이지 않았다. 알고 보니 수술이 ‘이만 저만하게 끝났다’는 단순한 내용을 알려주는 일임에도 끝까지 배우자는 제쳤고, ‘젊은 친인척’은 어디 갔냐며 자리를 떴단다.

 이어진 통원 치료에서도 집도의의 태도 때문에 어르신은 언짢아 하셨다. 환자는 결국 ‘을’일 수밖에 없나 하는 자괴감이 찾아왔다.

 "(그가) 생각하는 정의라든가, 민주주의의 관점을 제가 이번 기회에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이 부분에 대해 왈가왈부하고 거론하는 것 자체가 시간낭비 같아요. 그리고 뭐라 그럴까. 이번 공모가 (그의) 실체를 공부한 수업료라고 생각해요. 코미디 같은 상황에 항의하거나 뭐 이런 게 의미가 있을까. 사실 어이가 너무 없어서. 실명 멘트 따셔도 괜찮고 상관 없습니다."

 한 달여 전, 경기도 산하 경기문화재단 대표이사 공모에서 두 명의 최종 후보자로 올랐다가 두 명 모두 ‘적임자 없음’으로 결론난 한 후보의 말이다. 당시 그의 말투에는 실소(失笑)가 넘쳤다. 애초 내정자가 최종 후보자에 포함되지 않아 두 명 다 탈락시켰다고 알려진 사례다. 이 자리는 아직도 공석이며, 재공모에 들어갔다.

 정부가 변하고 광역 및 기초 단체장들이 바뀌며 기대감이 컸다. 특히 채용비리 등을 청산해야 한다는 분위기는 고무적이었다. 정부가 변한 뒤 가장 먼저 한 일 역시 이 중 하나였기 때문에 바뀐 단체장들 역시 이런 기류(氣流)에 편승(便乘)됐거나 편승했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이런 기류는 온데간데없다. 기대감이 너무 컸던 탓일까, 아니면 아직까지는 초반이라 좀 더 지켜봐야 할지 모를 일이다. 딱 한 가지 분명한 건 작금 진행되고 있는 도 산하기관 수장의 인사가 과거와 다를 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누군가 했던 말이 스치듯 지나간다. "정치인들, 특히 단체장들이 바뀔 때마다 산하기관에 꽂는 코드인사는 채용비리일까, 아닐까.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채용비리와의 차이는 과연 무엇일까." 개인적인 질문이 떠오른다. 앞서 겪은 의사의 전횡(專橫)과 비교하면 어떤 게 더 나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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