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에게 조용히 갚아주는 법 
김효은 / 청림출판 / 1만4천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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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에 출근해서는 오늘 무슨 일을 할지, 점심 메뉴는 뭐가 좋을지, 언제 퇴근할지 이 세 가지 고민만으로 충분하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출근과 동시에 부당한 지시, 불합리한 언행, 성차별적 발언 등이 만연한 공간이 돼 일에만 집중할 수 없는 상황들이 자주 펼쳐진다. 그럼에도 부하 직원이 상사에게 ‘못 해요’, ‘안 해요’라고 직접 표현하는 순간 피해는 고스란히 부하 직원에게 돌아가기 일쑤다. 그래서 이 책의 주인공 ‘조용히’는 우회하는 길을 택한다.

 과일은 여자가 깎아야 맛있다는 남자 어른의 말에 순순히 따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세상에서 최고로 맛없게 보이는 과일 깎기 신공을 펼친다. 자기 도시락도 대신 싸 달라고 말하는 무개념 선배에게는 특별히 아끼는 고수를 잔뜩 올린 인스턴트 밥을 꺼내 준다. 뻔뻔하게 남의 치약을 매일 빌려가 다 써 버린 부장에게는 유통기한이 지난 딸기맛 치약을 선물하기도 한다.

 우리가 현실에서는 한 번도 써 보지 못한 핵사이다 호신술을 보며 독자들은 짜릿한 대리만족을 느낀다. ‘바로 이거였어’, ‘이쯤 되면 사이다를 넘어 소화제다’와 같은 탄성을 자아내게 만든다. 마음속에만 담아두고 차마 행동하지 못했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후련하게 만드는 용히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상대가 멋쩍게 웃어넘길 수밖에 없는 상황을 연출하는 그녀를 보며 시원한 위로를 받게 될 것이다.

 각종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라온 글들을 보면 ‘이거 화내도 될 상황인가요’, ‘내가 너무 예민한 건가요’라고 물어보는 글들이 정말 많다. 특히 직장이 아닌 일상에서 겪었다면 바로 시시비비를 따졌을 일인데도 상사라는 이유로 당황하거나 말문이 막혀서 그냥 넘어간 일이 계속 생각나 괴로워하는 사람도 부지기수다. 항상 당하기만 하는 자신을 자책하는 일은 그만두자. 이 책의 저자는 최고의 인생 호신술은 나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용기라고 말한다.

 저자 김효은은 CBS 디지털미디어센터 기자다. 2008년 CBS에 입사해 올해로 직장생활 11년 차다. 2010년 환경미화원 노동자들의 인권 문제를 다룬 기사로 한국기자상과 국제엠네스티 언론상을 받았다. 그는 회사에서 최초로 생리휴가를 낸 1호 여기자이자 2017년 가을부터 ‘삼우실’ 연재를 시작해 얼떨결에 작가가 됐다고 한다. 좌우명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자, 단 월급만큼만’이다.

 떨림과 울림
 김상욱 / 동아시아 / 1만5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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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림과 울림」은 빛과 시공간, 원자, 전자부터 최소작용의 원리, 카오스, 엔트로피, 양자역학, 단진동까지 물리에서 다루는 핵심 개념들을 차분히 소개하면서 ‘물리’라는 새로운 언어를 통해 우리 존재와 삶, 죽음의 문제부터 타자와의 관계, 세계에 관한 생각까지 새로운 틀에서 바라볼 수 있게 안내한다.

 물리학자가 원자로 이뤄진 세계를 보는 방식은 마치 동양철학의 경구를 읽는 듯하다. 나의 존재를 이루는 것들은 어디에서 시작됐는지, 죽음을 어떻게 성찰할 수 있을지, 타자와 나의 차이는 무엇인지. 엄밀한 과학의 정답을 제시하는 대신 물리학자만이 안내할 수 있는 새로운 시선을 제시해 준다.

 이 책은 또 과학은 무지를 기꺼이 인정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 김상욱 교수는 과학자로서 공부하며 뼈에 사무치게 배운 것은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인정하는 태도’였다고 말한다. 무엇을 안다고 말할 때는 그것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물질적 증거를 들어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이다. 이것을 그는 ‘과학적 태도’라고 말한다. 과학은 지식의 집합체가 아니라 세상을 대하는 태도이자 사고방식이라는 이유에서다.

 「떨림과 울림」은 이러한 과학에 대한 물리학자 김상욱의 시각에서 쓰인 책이다. 과학을 소재로 한, 영화와 책에 관한 같은 주제의 글들도 한데 엮어 읽을거리를 더했다.

 바르도의 링컨
 조지 손더스 / 문학동네 / 1만5천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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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도의 링컨」은 링컨 대통령이 어린 아들을 잃은 후 무덤에 찾아가 아들의 시신을 안고 오열했다는 실화를 모티브로 한 소설이다.

 저자 조지 손더스는 오래전 워싱턴을 방문했다가 지인에게서 링컨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링컨의 셋째 아들 윌리가 장티푸스에 걸려 열한 살이라는 어린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비탄에 잠긴 링컨이 몇 차례나 납골묘에 들어가 아이의 시신을 꺼내 안고 오열했다는 것이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손더스의 머릿속에 즉각 하나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링컨기념관과 피에타가 합쳐진 이미지. 이것이 「바르도의 링컨」의 출발점이었다. 손더스는 오랫동안 이 이미지를 마음에 품어오다 2012년 본격적으로 소설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바르도’는 ‘이승과 저승 사이’, ‘세계의 사이’를 뜻하는 티베트 불교 용어로, 죽은 이들이 이승을 떠나 저세상으로 가기 전 머물러 있는 시공간을 가리킨다. 이 작품은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윌리 링컨을 중심으로, 아직 바르도에 머물러 있는 영혼들이 대화를 나누며 서사를 이끌어 가는 독특한 형식의 소설이다.

 바르도에 있는 40여 명의 영혼들이 등장해 각자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것이 이 소설의 주요 골자이지만 사이사이 링컨과 그의 시대에 관한 책, 서간문, 신문 등에서 인용한 문장들로 이뤄진 챕터가 끼어들면서 가상의 세계와 실제 세계가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고 보완하는 형태로 소설이 진행된다.

  조현경 기자 cho@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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