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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사랑을 주고받을 때 느끼는 감정이 행복감입니다. 그래서 행복하려면 사랑을 나눠야 합니다. 사랑은 귀하게 여기는 마음을 표현하는 행동입니다. 그 대가로 우리는 행복을 선사받습니다. 실천이 따르기 때문에 올바른 사랑을 나누기가 쉽지 않습니다.

 유학시절 허름한 아파트에서 1년 정도 살았던 적이 있습니다. 맞은편 아파트에는 젊은 백인 여성이 세 들어 살았습니다. 어느 날, 새벽 6시께 문을 나서는데 마침 맞은편 대문이 열려진 상태로 그 여성과 남자친구가 입맞춤을 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서로에게 ‘I love you, darling!’을 외치면서 말입니다. 계단을 내려오면서 저는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새벽에 나가 일과 공부를 하고 늦은 밤이 되어서야 귀가하곤 하던 바쁜 일정 속에서 저희 부부의 대화는 무척 단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녀왔냐고 물으면 그렇다고 대답하는 것이 고작이었거든요. 그런데 저렇게 사랑을 표현하고 사는 그들을 보면서 저도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성격이 내성적이어서 그런지 그게 잘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1년을 그곳에 살면서 저는 보았습니다. 백인 여성은 그대로인데 남자 친구는 몇 달에 한 번씩 바뀌었습니다. 그때마다 그들은 ‘I love you, darling’을 연발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사랑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십여 년 전에 노환으로 걸음도 못 걸으시는 어머니가 한국에 나온 저를 보고 싶다며 잠시 귀국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가족들의 만류와 주치의의 경고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혹시 비행기에서 호흡이 막히면 목에 뿌리라고 약을 처방해주었고, 그것을 들고 나오셨습니다.

 불편한 걸음걸이에 도움이 될까 해서 가벼운 알루미늄 목발을 사드렸습니다. 어느 날 오전에 집을 나서는데 백화점에 가서 제가 입을 티셔츠를 하나 사겠다고 하셨습니다. 몸도 불편하신데 집에 계시라고 당부하고는 집을 나섰습니다. 그날 낮에 낯선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어머니가 횡단보도에서 쓰러지셨다는 것을 알리는 행인의 전화였습니다.

 "횡단보도에서 쓰러지신 어머니가 무언가를 입에 넣으려고 해서 보니까 스프레이였어요. 제가 대신 뿌려드리니까 잠시 후 일어나셨어요."

 제가 감사를 표하자 그가 말씀을 이어갔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쓰러지셨을 때 지팡이는 저 멀리 날아갔지만 손에 든 백화점 쇼핑백은 꼭 쥐고 계셨어요."

 이 말에 저는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지팡이는 자신의 생명을 지키는 것이고, 쇼핑백에 담긴 저의 티셔츠는 다시 살 수 있는 것인데 말입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이토록 헌신적입니다. 제 어머니만 그러겠습니까. 이 글을 접하시는 독자 여러분들의 어머님 역시 똑같습니다. 어쩌면 이 땅의 어머니들이 계셨기에 우리 모두가 이렇게 온전히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사랑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나누는 것,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라는 사랑의 진리를 우리 모두는 어머니로부터 배우며 컸습니다.

 어느 책에서 읽은 짧은 글이 떠오릅니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혼부부의 이야기입니다. 남편이 어느 날 지방출장을 며칠 다녀온다고 나갔습니다. 그날 밤 아내는 침대의 한가운데에 누워 오랜만에 편히 자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왠지 불편합니다. 그래서 남편이 누울 자리를 비워두고 자신이 늘 눕던 자리에 누웠습니다. 그랬더니 불편함이 사라졌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은 마음속에 상대의 자리를 남겨두는 것입니다. 보이든 보이지 않든 상대를 늘 배려하는 사랑의 결과는 애잔한 행복감으로 채워집니다. 강물이 조건 없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이 이런 사랑 역시 진한 행복감으로 흘러갑니다. 조건이 달린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닐 겁니다. 조건에 맞으면 기쁘고 맞지 않으면 슬플 테니까요.

 ‘그까짓 티셔츠가 뭐라고’ 자신의 생명보다 그것부터 챙기는 어머니의 희생적인 사랑 덕분에 이나마 죄를 덜 짓고 삽니다.

 많이 그립습니다. 하늘에 계신 어머니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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