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헤이룽장성(黑龍江省)의 성도인 하얼빈(哈爾濱)시는 ‘2018 동아시아 문화도시’를 통해 명실상부한 중국의 대표 문화도시로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하얼빈시는 5만3천여㎢ 면적에 인구 1천80여만 명에 달하는 ‘메가도시’다. 중국의 성도 중에서 면적은 가장 넓고, 인구도 세 번째로 많다. 100여 년 전만 해도 쑹화강(松花江) 지류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었으나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러시아가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연장하는 중둥(中東)철도를 건설하면서 급속도로 발전했다. 특히 러시아가 도시계획부터 건설까지 책임지고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본떠 조성하면서 ‘동양의 모스크바’로 불리기도 한다. 하얼빈 도심에는 당시 건설된 건축물 500여 채가 아직도 원형 그대로 남아 있어 이국적인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다. 1918년 러시아 내전에서 패한 러시아 백군이 하얼빈으로 피난오면서 러시아 사회가 형성됐다. 러시아 출신의 유대인 공동체도 만들어졌다. 유대인 공동체는 향후 하얼빈이 국제적인 음악도시로 발돋움하는 원동력이 됐다.

 우리에게는 안중근 의사가 1909년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곳으로 더욱 알려진 곳이기도 하다.

▲ 서구식 건물 모습.
# 하얼빈의 동아시아 문화도시 3대 핵심 분야

 한국의 부산, 일본 가나자와와 함께 ‘2018년 동아시아 문화도시’로 선정된 하얼빈은 ‘빙설(氷雪)의 약속’과 ‘여름여행’, ‘음악도시’라는 세 가지의 주제로 이번 동아시아 문화도시를 진행했다.

 헤이룽장성의 북쪽은 러시아와 맞닿아 있는데, 한겨울에 영하 40도까지 내려간다. 하얼빈시 역시 위도가 높아 매서운 추위가 유명한데, 하얼빈은 지리적 특성을 이용해 1963년부터 얼음과 눈을 이용한 축제를 이어오고 있다. 특히 하얼빈의 빙등제와 빙설제는 지구촌 3대 겨울 축제로 꼽히며 해마다 수많은 관광객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또 빙설의 문화가 발달한 도시답게 얼음이나 눈과 관련된 스포츠도 활성화 돼 있고, 선수도 다수 배출되고 있다. 올해는 제34회 빙설제가 지난 1월 초부터 2월 말까지 진행됐다.

▲ 제34회 하얼빈 여름 음악제 공연 모습
 하얼빈 국제빙설제 기간에는 타이양다오 공원을 비롯해 자오린 공원과 중양다제 거리 등 지역 곳곳에서 눈과 얼음으로 만들어진 거대하고 섬세한 조각들이 선보인다. 여기에 얼음조각 안에 조명을 넣어 밤이 되면 더욱 화려하고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 한다. 초기에는 중국의 역사적 건축물이나 신화, 인물 등을 주제로 했으나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내용도 다양해지고 있다. 올해는 동아시아 문화도시 조각도 추가로 제작됐다.

 하얼빈을 ‘빙설의 도시’로만 여긴다면 잘못된 판단이다. 하얼빈에서 즐기는 ‘여름여행’ 역시 색다른 매력으로 관광객들에게 다가간다. 매년 7월부터 8월 사이 열리는 하얼빈 맥주축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인기가 높아지고 있으며, 유럽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중양다제 거리 노천에서 중국 특유의 꼬치와 하얼빈 맥주와의 궁합은 관광객들의 지갑과 시간을 소비하게 만든다.

 또 여름에 열리는 국제마라톤대회 역시 세계 30여 개국에서 3만여 명이 참가하는 탄탄한 행사 중 하나다.

▲ 빙설제 실내 축소판.
 여름철에 열리는 음악회도 시민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한다. 올해 34회를 맞은 하얼빈 여름 음악회는 1961년부터 시작된 유서 깊은 행사다. 초창기에는 매년 열렸으나 해를 거르는 경우도 생기면서 공교롭게도 올해 34회 빙설제와 회수가 같아졌다. 음악제는 크게 3가지 분야로 나뉘는데, 중국 전역에서 실력자들이 참여하는 성악대회와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대회인 쇤필드 국제현악콩쿠르(Schoenfeld International String Competition), 그리고 국제 아코디언대회 등이 동아시아 문화도시 여름여행 프로그램으로 진행됐다.

 여름의 쑹화강 일대는 도시에 무한한 풍경을 더한다. 1천80㎢에 달하는 쑹화강 습지대는 광활한 경관과 함께 다양한 경치를 연출해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여름철 쑹화강 일대는 풍경을 즐기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하얼빈은 2010년 유네스코가 선정한 음악도시기도 하다.

 중국에서 최초로 오케스트라가 탄생한 도시이자, 첫 번째 극장도 하얼빈에 위치해 있다. 특히 하얼빈의 오케스트라는 100여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20세기 초 러시아 국적의 유대인들이 하얼빈에 들어오면서 오케스트라가 시작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당시 오케스트라 단원의 절반은 유대인이었다고 전해진다.

▲ 빙설제 실내 축소판.
 하얼빈시는 동아시아 문화도시를 진행하면서 전문 음악인들의 공연은 물론, 시민들과 함께하는 음악 프로그램도 다수 마련했다. 하얼빈 내 50개 공원에서 6월부터 10월까지 프로 음악인들과 일반 시민들이 함께하는 음악공연이 이뤄졌으며 한국과 중국, 일본의 청소년들이 참가하는 가곡대회도 열렸다.

 동아시아 문화도시를 맞아 시민들이 참여하는 1천여 개의 크고 작은 프로젝트가 마련됐다.

▲ 안중근의사 기념관.
# 2018 동아시아 문화도시, 끝이 아니라 시작

 하얼빈시는 지역의 특성을 살린 프로그램과 더불어 한국과 일본과의 다양한 교류 행사도 진행했다.

 동아시아 문화도시의 하얼빈 개막식에는 총 40여 개 나라에서 관계자들이 참석했으며, 부산시 무용단과 가나자와시의 예술단도 축하공연에 함께했다. 또 한중일 청소년들의 태극권 교류대회와 3개국의 모델 패션쇼가 열렸고, 한중일 시민들이 촬영한 사진 작품들은 지난 10월 중순 진행된 동아시아 문화도시 폐막식에서 전시됐다. 오는 12월 중순에는 한중일 문화예술교육포럼도 예정돼 있다.

 특히 올해에는 한중일 문화장관회의가 하얼빈에서 진행돼 도시의 위상을 한층 더 높였다는 평가다.

▲ 고우 큉지 하얼빈시 인민정부 문화방송국장.
 고우 큉지(53) 하얼빈시 인민정부 문화방송국장은 "하얼빈은 규모가 큰 도시이기는 하지만, 베이징이나 상하이보다 발전한 도시는 아니었다"며 "그러나 이번 한중일 장관회의 등 동아시아 문화도시를 통해 하얼빈을 잘 알지 못하는 전 세계인들에게 도시의 이름을 떨치는 계기가 됐다"고 강조했다.

 하얼빈시는 향후 올해 선정된 한국과 일본의 도시들과 꾸준히 네트워크를 이어가면서 청년 교류, 유럽 문화도시와의 교류 강화, 동아시아 문화도시 기금 마련 문제, 아세안 문화도시 구상 등을 3개국 관계자들과 지속적으로 논의하겠다는 목표다.

 고우 큉지 국장은 "비록 올해 행사는 끝났지만, 이 프로그램들을 어떻게 이어가야 하는지는 우리들에게 주어진 큰 숙제"라며 "국내 도시간 교류는 물론, 한중일 등 동아시아 도시들과 꾸준히 교류를 이어가면서 어떤 각 도시가 어떻게 발전할 수 있을지 고민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병기 기자 rove0524@kihoilbo.co.kr

* 이 기사는 기호일보와 인천문화재단이 협력해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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