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지인의 출판기념회에 갔다. 저자가 지난 15년 동안 여러 언론사에 기고한 글들을 묶어 처음으로 책을 낸 자리였다.

그는 수줍게 출판 소감을 말하면서 다음 글에 대한 계획도 내비쳤다.

"‘잘사는 것’에 대한 글을 써보고 싶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잘살다’에 대한 사전적 의미를 ‘재물을 넉넉하게 가지고 살다’라고 정의한다. 우리는 흔히 경제적으로 넉넉하다는 뜻을 전달할 때 ‘잘산다’는 말을 쓴다. 하지만 외국에서는 재물이 아닌 삶의 풍요로움, 행복한 삶을 표현할 때 ‘잘산다’라는 말로 표현한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과연 ‘잘사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글을 써보고 싶다는 포부였다.

문화적 충격이었다.

대한민국 사회는 삶의 가치를 물질의 풍족함으로 여겼고, 나를 비롯해 대부분의 구성원들은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유엔 산하 자문기구인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가 전 세계 156개국을 상대로 국민 행복도를 조사한 ‘2018 세계행복보고서’에 따르면 핀란드와 노르웨이, 덴마크가 1위부터 3위를 차지했다. 우리나라는 57위였다.

덴마크인 51명에게 "행복한가"라고 물으면 43명은 그렇다고 답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행복한 이유는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자신이 그렇듯 남도 자신을 존중하고, 피해를 주지 않기에 사는 것이 즐겁고 행복하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행복 국가로 널리 알려진 부탄은 낙후된 지역까지 TV가 보급되면서 오히려 행복지수는 떨어졌다고 한다. TV를 통해 하고 싶고, 갖고 싶은 것이 많아져 행복감이 줄어들었다는 분석이다.

한국에서 사용되는 ‘잘살다’의 의미는 부탄이나 덴마크 등에 적용되지 못한다. 잘살기 위한 필수불가결 요소에 ‘재물’은 포함되지 않아서다.

지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잘사는 삶’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다. 나는 지금 잘살고 있는지, 앞으로 어떻게 잘살아야 하는지. 당신은 잘살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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