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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서리가 축제를 준비하다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기호일보 webmaster@kihoilbo.co.kr 2018년 11월 16일 금요일 제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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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르네상스 시대의 독일 화가 알브레히드 뒤러가 그린 ‘기도하는 손’에 얽힌 사연이 무척 감동적입니다.

 어린 시절 가난 탓에 그림을 공부할 수 없었던 뒤러는 똑같은 처지에 있던 동네 친구와 이야기를 나눕니다. 무엇보다 미술대학에 가서 공부해야 하지만 비싼 학비 때문에 도저히 갈 수가 없는 현실에 절망하고 있던 어느 날, 친구가 말합니다.

 "뒤러야, 우리 둘이 동시에 공부하기란 불가능해. 누군가가 뒷받침해야 해. 그러니 네가 먼저 학교에 가서 공부해라. 네가 졸업할 때까지 내가 식당에서 일하면서 뒷바라지를 할게. 그리고 네가 졸업하면 네가 내 학비를 대주면 되잖아."

 뒤러는 친구가 보내주는 학비로 열심히 그림 공부를 했습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자신 때문에 고생하는 친구에게 고마움을 표하기 위해 그가 일하는 곳을 찾아갔습니다. 친구는 마침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뒤러는 친구의 기도 내용을 들었을 때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신이시여, 제 손은 심한 노동으로 굳어져 있습니다. 신의 영광을 위해 내 친구 뒤러가 진실한 그림을 그리게 그에게 힘을 주소서."

 이렇게 ‘기도하는 손’이 세상에 나왔습니다. 뒤러가 눈물 흘리는 아름다운 마음도 멋지지만 저는 친구의 마음에서 격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 친구처럼 자신의 것을 먼저 내어주는 것, 이것이 진실한 사랑이고, 이런 사랑을 우리도 나누어야 한다는 배움을 얻습니다.

 고교생 아들이 있었습니다. 공부하기가 죽기보다도 싫었습니다. 늦게까지 학교에 머물다가 집에 들어오는 시간 역시 견딜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웠습니다. 엄마와 아빠가 자신을 볼 때마다 ‘공부하라’는 얘기 때문입니다. 그날도 밤 11시가 되어 집에 도착하니, 마침 아빠가 잔소리를 하기 시작합니다.

 "내가 나 잘되겠다고 너보고 공부 열심히 하라고 하는지 아느냐? 너 잘 되라고 하는 말이지."

 도저히 견딜 수 없어 하던 아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이렇게 소리치고는 문을 박차고 나가버렸습니다.

 "내가 다시는 집에 들어오나 보세요."

 아빠는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아들이 무척이나 서운했을 겁니다. 괘씸하기도 했고요.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습니다. 새벽 1시가 가까이 돼도 아들이 돌아오지 않자 서운함과 분노는 이내 불안감과 걱정으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아내는 소파에 앉아 울고만 있습니다. 걱정이 된 아빠는 두툼한 겉옷을 걸치고 아들을 찾아 나섰습니다. 주변에 있는 PC방들을 샅샅이 뒤졌지만 없습니다.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동네 공원에 들러 잠시 생각을 정리하기로 했습니다.

 이게 웬일인가요. 그곳 벤치에 아들이 드러누워 자고 있는 게 아닌가요. 초겨울인데 말입니다. 녀석이 집을 나갔지만 정작 갈 곳은 없었을 겁니다. 너무도 안타깝고 불쌍해 보입니다. 머리 좋은 부모를 만났으면 저렇게 고생하지 않아도 될 텐데….

 아빠 자신의 고교시절도 그랬습니다. 공부를 잘해야 훗날 진로선택이 넓어진다는 부모님의 말씀은 그저 잔소리려니, 하고 무시했었습니다. 아빠는 겉옷을 벗어 아들의 몸 위를 덮어줍니다. 그리고 아들의 머리를 살며시 들어 자신의 허벅지에 올려놓습니다. 아무 것도 모르고 자는 아들의 모습을 내려다보며 아빠의 눈가가 촉촉해집니다. 이렇게 아빠도 잠이 스르르 들어버립니다.

 아들이 눈을 떴습니다. 자신이 춥지 않게 잘 수 있었던 이유를 그제야 알았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머리 숙이고 졸고 계신 아빠 머리 위에 하얀 겨울서리가 내려앉아 있습니다. ‘억’ 하고 눈물이 터집니다. 아빠가 이렇게 자신을 사랑하고 있었다는 것을 서리를 통해 깨달았습니다. 잠시 후, 눈을 뜬 아빠와 아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사랑해’라는 말과 함께 펑펑 울 겁니다. 이렇게 겨울서리는 잠시 후 벌어질 아름다운 감동의 축제를 준비하고 있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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