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증권선물위원회(이하 증선위)가 삼성바이오로직스(이하 삼바)에 대해 "고의로 분식회계를 했다"고 발표했다. 2016년 금융당국이 문제 없다는 판단을 내린 지 2년 만에 (정권이 바뀌자) 다시 자신들이 내린 판단을 수개월간 유보하더니 증선위를 통해 180도 뒤집힌 결론을 내린 것이다.

핵심은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앞두고 ‘제일모직의 자회사인 삼바의 가치를 끌어올려 (제일모직 지분이 많은) 이재용 부회장의 승계 구도를 유리하게 만들었느냐’다. 좀 더 깊이 들어가면 2012년 삼바의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를 미국 제약사인 바이오젠과 함께 만들 당시 ‘약속했던 콜옵션 계약(그들이 원할 때 정해진 가격에 주식의 49%를 살 수 있는 권리)을 어떻게 볼 것이냐’의 문제라 하겠다.

증선위는 이것이 중대한 계약 내용이기 때문에 2012년부터 삼바의 회계장부에 (바이오젠에 갚아야 할) 부채로 공시를 했어야 했는데, 뒤늦게 처리해서 회사의 가치를 부풀렸다는 것이다. 한편 삼성은 모든 것을 국제회계기준(IFRS)에 부합하도록 회계 처리해왔다는 입장이다.

어찌 됐든 이번 결정은 여러 면에서 득보다 실이 큰 자충수가 됐다. 정부가 나서서 회계법인 감사 제도 책임과 권한을 무효화하고, 8만 명 이상의 소액주주에게 투자 손실을 입힌 것도 모자라 엘리엇 같은 해외 투기 기업에게 법적으로 유리한 변론 근거까지 만들어준 꼴이 됐기 때문이다.

특히 금융당국 스스로가 ‘회계리스크’를 키웠다는 점은 두고두고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IFRS는 일관성을 유지하는 전제 하에 ‘회계 처리의 기업 자율성을 보장’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그런데 이번에 금융당국이 정치 논리에 휘둘려 쓸데없이 깊이 들어가면서 그런 원칙을 위반한 모양새가 됐다.

더 큰 문제는 결과적으로 미래산업의 성장동력을 훼손하는 데 정부가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이번 조치로 삼바의 대외 신뢰도가 추락하면 CMO(주문생산) 수주 감소로 이어질 것이고, 이는 다시 공장 가동률 저하와 고용인력 감축, 신규 투자 재검토로 확산될 수 있다. 정말로 필요한 노동개혁과 규제완화는 소홀히 하면서 왜 이런 일은 그토록 집요하게 뒤집고 털어서 뭐라도 끄집어 내려 하는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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