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졌다. 일생의 첫 결전을 치르는 수험생들을 위해 온 나라 근로자들의 출근 시간이 1∼2시간 늦춰졌다. 듣기평가 시간에는 항공기 이착륙이 금지됐다. 기업과 상인들은 수험표를 가진 학생들을 위해 각종 이벤트와 할인 상품을 준비했다. 온 나라의 하루 일정이 수험생들에게 맞춰졌다.

 시험이 끝나고 관련 업계는 수능 관련 소식을 전했다. ‘물·불수능’과 같은 난이도 진단이 대세였다. 부정행위 사례와 출제본부의 총평도 뒤따랐다. 저녁 무렵에는 해방감에 도취된 학생들의 일탈 소식도 들렸다. 우리네 수능의 흔한 모습이다.

 하지만 1994년부터 24년간 실시된 이 집단고사(集團考査)의 현장은 어땠을까. ‘밀레니엄 베이비’로 불리는 2000년생(生) 44만여 명과 ‘세기말’에 태어난 1999년생 졸업생 등 13만여 명, 도합 50여만 명이 낯선 고사장에 섞여 있었다. 이들이 소수의 일선학교 선생님들(감독관)의 획일적 통제를 잘 따랐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비장한 결기의 공기는 1교시까지만 해당됐다. 1교시가 끝나자 전국 1천190곳의 고사장에서는 수험생 수백, 수천 명이 수능을 안 보겠다며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수능 역사상 최대 결시율(10.4%)이다. 쉬는 시간 복도에는 수험표와 ‘수능 샤프’를 챙긴 학생들이 수능포기 서류를 작성하느라 인산인해를 이뤘다. 원칙적으로는 학부모의 동의며 1∼3차로 감독관 확인 절차를 거쳐야 했지만 파도처럼 밀려든 포기생은 소수의 감독관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이 행렬은 매 교시가 끝날 때마다 계속됐다.

 인천은 3교시 누적 결시율 약 12%로 전국 최대치를 기록했다. 약 80%가 수능 전 ‘수시’로 대입을 정해 놓은 상태여서 수능을 볼 필요가 없었다. 이들이 수험장에 등장해 수험표를 챙겨가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할인 혜택과 경험적 차원(인증)이다. 민주적·수평적 분위기 속에서 자라 자기 표현에 강한 이들의 ‘자유’는 수직적 통제가 먹히지 않았다. 복도는 화장실과 양호실을 오가는 학생들로 넘쳐 났고 기자재의 즉각적 교체 요구 등 각종 이의 신청은 수백 건에 달했다. 이들은 한 공간에서 ‘나의 시험’을 방해한 이들과의 소송전도 예고했다. 집단고사는 변화돼야 한다.  <김종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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