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이시카와(石川)현 현청 소재지인 가나자와(金澤)시는 일본의 대표 문화도시다. 적은 인구(47만여 명)에 비해 이토록 많은 유·무형 문화재와 문화시설을 갖추고 있는 도시는 일본에서 가나자와가 거의 유일하다.

 일본 대표 문화도시로서의 가나자와는 과거 300여 년간 이곳을 다스린 ‘마에다’ 가문 덕분에 탄생했다. 과거 에도시대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견주는 장수였던 마에다 도시이에는 가나자와 지역을 다스리는 영주로서 무력 대신 문화 번영에 집중하는 정책을 폈다. 당시 시대상 지역에서 축적된 부는 전쟁 등 무력에 투입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마에다 가문은 반대로 문화와 예술 분야에 온전히 투자한 것이다.

 지진이나 전쟁 등의 피해로 옛 모습을 잃은 도시들과 달리 가나자와는 에도시대부터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 과거 일본의 모습을 간직한 건축물과 무형문화재 등은 오늘날 가나자와의 소중한 자산이 됐다. 에도시대 목조건물이 즐비한 ‘히가시차야가이(東茶屋街)’, 가나자와 전통문화의 상징인 ‘가나자와성 공원(金澤城公園)’, 일본 3대 정원 중 하나인 ‘겐로쿠엔(兼六園)’ 등은 매년 수백만 명에 달하는 관광객들의 발길을 이끈다.

 여기에 일본의 전통극인 ‘노(能)’를 비롯해 염색기술(가가유젠), 다도·자개 등 공예문화, 사무라이문화 등 지역의 근본이 되는 다양한 무형문화를 그대로 보존해 온 덕분에 가나자와는 명실상부한 일본의 대표 문화도시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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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도 시대 목조건물을 그대로 간직한 히가시차야가이 전경.
# 놀라움의 연속, 가나자와 공예문화

 가나자와는 한국의 부산, 중국의 하얼빈(哈爾濱)과 함께 ‘2018년 동아시아 문화도시’로 선정됐다. 동아시아 문화도시로서 가나자와가 중심축으로 내세운 문화는 바로 ‘공예’다. 관광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특별히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기보다는 가나자와가 지닌 전통과 활력을 알리는 길을 택했다.

 가나자와는 2009년 6월 유네스코가 정한 ‘창의도시 네트워크’ 중 ‘공예 및 민속 예술분야’에 등록됐다. 가나자와의 대표 마스코트 중 하나도 ‘손’을 캐릭터로 재탄생시킨 모양이다. 수작업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 마스코트는 ‘모든 물건을 사람이 직접 손으로 만든다’는 의미를 담았다.

 가나자와의 대표 공예 중 하나는 ‘금박’공예다. 지명 자체가 ‘금이 나오는 연못’일 만큼 가나자와의 금박은 유명하다. 일본 내에서 생산되는 금박의 99% 이상이 가나자와산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인지 가나자와에서는 금박을 뿌린 음식이나 디저트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일본 유일의 금박 전문 박물관인 ‘야스에 금박 공예관’에서는 관광객들이 금박 제조 공정과 도구, 각종 금박 공예 예술품 등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다. 가나자와의 동아시아 문화도시 엠블럼 역시 한자 ‘금(金)’을 엮어 만들었을 정도다.

 이 외에도 가나자와의 전통 공예 계승·발전을 위한 종합시설인 ‘가나자와 우타쓰야마 공예공방’, 가나자와 전통 공예와 다도문화를 소개하는 ‘나카무라 기념 미술관’, 가나자와 전통 공예인 구타니야키 그림 그려 넣기 체험과 제조공정 견학이 가능한 ‘구타니 고센 가마’ 등 공예를 몸소 느낄 수 있는 시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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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나자와 내 공예품 가게 모습.
 

 # 전통과 새로운 문화의 공존

 동아시아 문화도시로 선정되면서 가나자와가 정한 슬로건은 ‘KANAZAWOW’다. 지명인 ‘Kanazawa’에 놀람을 뜻하는 영단어 ‘Wow’를 결합했다.

 가나자와를 방문한 관광객들은 고풍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도시적인 가나자와의 풍경에 놀라곤 한다. 전통의 상징인 가나자와성을 조금만 지나면 도시 내 새로운 문화시설을 대표하는 ‘가나자와 21세기 미술관’을 볼 수 있는 식이다. 전통을 이어가는 동시에 새로움도 창조하고자 하는 가나자와만의 특색 있는 문화가 펼쳐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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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나자와 성.
 가나자와의 기본적인 문화정책은 ‘가나자와만의 문화 유지’와 ‘자연스러운 인재 육성’으로 볼 수 있다. 가나자와는 이 지역과 관련이 있거나 이 지역에 전통적으로 내려오고 있는 문화를 선별해 지킨다. 다른 지역의 문화를 참고하거나 가져오는 일은 없을 정도로 정체성과 자부심이 강하다. 각종 전시관과 문화시설 역시 가나자와 출신이거나 이곳에 기초를 둔 철학가, 소설가, 예술가 등의 것을 우선적으로 한다.

 이는 가나자와의 인재 육성 정책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했다. 가나자와는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다양한 문화에 발을 담글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초등학생과 중학생은 전통극인 ‘노’에 대해 2년여에 걸친 커리큘럼을 이수하며 터득하고, 적어도 1번 이상은 ‘노’ 공연을 관람할 수 있도록 지원받는다. 대학에 진학하면 관련 동아리에서 전문성을 이어가며, 동아리가 아니더라도 여름학기 단기 교육과정 등 참여도 가능하다. 초등학교 4학년 즈음에는 21세기 미술관에 초대를 받아 큐레이터의 설명을 들으며 관람하는 기회도 준다. ‘뮤지엄 크루즈’ 등 지역 곳곳에 있는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아이들이 직접 보고 들으며 문화를 ‘모험’할 수 있도록 장려한다.

 덕분에 가나자와에는 이 지역 작가들의 활발한 활동이 펼쳐졌거나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이들의 활동은 도쿠다 슈세이 기념관, 이즈미 교카 기념관 등 대표 예술가 및 문예가의 기념관이나 가나자와 문예관 등 문화시설에서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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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나자와 21세기 미술관 전경.
 

 # 세계로 뻗어나가는 문화도시

 가나자와는 이미 전 세계 다양한 도시와의 자매도시 결연을 통해 문화는 물론 각종 분야에서의 현안을 공유하고 있다. 한국 전주, 미국 버팔로, 독일 겐트, 중국 다롄(大連) 등이 가나자와의 주요 자매도시들이다.

 가나자와는 동아시아 문화도시 선정을 통해 세계에 친숙한 문화도시로 발돋움하고자 한다. 이번 동아시아 문화도시 응모 역시 도쿄 올림픽이 열리는 2020년까지 가나자와의 문화예술이 세계적으로 존재감을 갖게 되기를 바라는 목표에서 진행됐다. 이를 통해 문화도시로서 더욱 활기 넘치도록 만들고자 하는 바람도 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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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나자와의 대표 축제인 '햐쿠만고쿠' 개막식 모습.
 가나자와는 동아시아 문화도시가 한국·중국·일본 등 아시아의 주요 3개국이 참여하는 문화행사인 만큼 이를 계기로 국가 간 교류를 넓히고자 한다. 각국 개막식 행사나 폐막식 행사에 가나자와 무형문화재 공연을 파견해 선보이는 등 전통을 알리는 데도 힘쓰고 있다.

 가나자와시 문화스포츠국 올림픽관련사업추진실 시게유키 이시쿠라 실장은 "3국 간 개막 행사나 각종 문화 행사에 공연 요청이 들어오면 흔쾌히 전통 문화 공연단을 파견하고 있으며, 최근 인천에서도 가나자와의 3가지 전통 악기 공연을 하고 돌아왔다"며 "동아시아 문화도시를 운영하면서 가나자와가 ‘공예’를 축으로 다양한 문화와 볼거리를 파생시킨 만큼 인천 역시 하나의 축을 세워 이끌어 나간다면 좋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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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연 기자 khy@kihoilbo.co.kr

* 이 기사는 기호일보와 인천문화재단이 협력해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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