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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락기 시조시인
온누리 단풍낙엽에 가을이 묻힌다. 길거리 은행 나목들이 허허롭다. 만추와 초겨울이 함께하는 이즘은 수확과 갈무리가 한창이다. 문단도 다를 바 없다. 각종 문학축전이 전국 곳곳에서 열린다. 지명이나 저명 문인의 이름을 딴 축제가 상당하다.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해당 문학상 시상식이다. 나는 얼마 전 수상이나 축사하러 안동과 제천을 다녀온 바 있다. 안동에서는 올해 처음으로 제1회 역동시조문예축전이 열렸고, 여기에는 제6회 역동시조문학상 시상식, 학술세미나 및 시조 낭송회 따위 행사가 있었다. 역동은 고려 말 성리학자 우탁 선생의 호다. 우리나라 최초의 시조로 인정받는 ‘탄로가’의 저자다. 나는 ‘무시래기를 삶으면서’라는 연시조 작품으로 수상의 영예를 안았고, 역동 우탁 선생 학술세미나에 토론자로 참여했다. 단양 우씨 문희공파 후원으로 한국시조문학진흥회가 주최한 행사였다.

 아시다시피 역동은 탄로가로서 뿐만 아니라 역학을 통달한 대학자였다. 약 200년 뒤 조선 퇴계 이황이 역동서원을 세워 기릴 만큼 그를 높이 받들었고, ‘도산십이곡’으로 시조의 맥을 이었다. 그야말로 안동 예안 일대는 영남 시조문학의 본산이요 한국시조문학의 메카라 하겠다. 역동이 나이 쉰 살 무렵 정착한 곳이며 퇴계가 살아간 곳이다. 요사이 역동이 살던 마을은 안동호수 속에 잠겼지만, 호면에 피어나는 아침 안개는 700여 년 세월을 넘어 연면히 백발의 인생을 노래하고 있었다. 여태 역동시조문학상이 살아 숨 쉬는 까닭이라고 해본다. 또한 역동은 이른바 지부상소의 당사자로 알려져 있다.

 ‘지부상소’란 여말인 1308년, 당시 난국 상황에서 충선왕의 패륜을 듣다 못해 역동이 거적을 메고 도끼를 든 채 대궐에 나아가 상소한 것을 말한다. 자신이 간하는 말이 잘못되었다면 그 도끼로 자기 목을 치라 했다. 왕의 낯빛이 부끄러움으로 바뀌고, 근신들이 두려움에 떨었다고 한다. 이를 작금의 시조 창작과 문학상에 빗대어 본다. 오늘날 시조문학상 수상작 중에는 시조의 율격미를 벗어나 서술체로 나열하거나, 3장 형태를 아예 무시하고 연시조의 각 수를 한두 줄로 길게 이어 처리한 것을 볼 수 있다. 마치 자유시의 연단락처럼 보인다. 또한 어느 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는 ‘현대시조는 정형시이면서 자유시이고, 자유시이면서 정형시가 돼야 한다. 현대시조가 과거의 시조와 다른 점은 정형이라는 틀에 구속받지 않는 데 있다’라고 쓰여 있다.

 아연실색할 일이다. 시조를 배우고자 하는 초심자들이나 우리 시조에 관심이 많은 외국인들이 어이 생각할까. 더 이상 이들을 현혹해서는 안 된다. 자유시와 잘 구별이 되지 않는 이런 작품을 현대시조라고 한다면 시조의 범국민문학화나 세계화는 요원한 일이다. 이로 인해 시조인 스스로 자유시의 아류라는 소리를 들을 바에는 차라리 자유시를 쓰면 될 일이다. 저명 시조시인의 이름을 딴 문학상에 이런 이의 이런 작품을 수상작으로 선정하는 것은 그를 욕보이는 거와 다름없다. 시조는 시조다워야 한다. 시조다움은 정형성을 지키는 것이다. 시조는 자유시가 아니다. 한국의 전통 정형시일 따름이다.

 한편, 시조를 연구하는 학자적 양심에 대해 잠깐 본다. 역동의 ‘탄로가’는 그 형식이나 작품성이 오늘날 미적 안목으로 보아도 놀라운 작품이다. 그런데 내가 역동 학술세미나에서 제기한 토론 요지는 그 탄로가가 2수냐 3수냐 하는 거였다. 3수가 주류 학설이라고 생각한 나는 3수라고 주장한 어느 학자에게 근거 자료 확인 차 문의했더니, 무성의한 답변이 돌아왔다. 뒤에 내가 자료를 확인해보니 그의 논문은 인터넷상 불명확한 자료 짜깁기에 가까웠다. 우리 시조단의 이런 부적정 상황에 대한 지부상소는 누가 누구에게 해야 하나. 1년 반 전 대한민국의 현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다. 얼마 전 종로 고시원 화재 희생자들은 일용직 노동자 계층이다. 이들도 엄연한 우리 국민인데, 당국의 관심에서 소외된 채 구천에서 속울음을 토할지도 모르겠다. 외환위기 이후 19년 만에 처음으로 실업자 100만 명 시대란다. 북한과 평화만 앞서 보이고, 안보와 취약계층과 민생경제는 뒷전으로 밀려보인다. 사회 현장의 쓴소리가 잘 전달되지 않는 것 같다. 이 시대 누가 대통령에게 역동 같은 지부상소를 할 것인가. 한 수 시조로 읊어본다.

<도끼의 말>

서슬 퍼런 도끼 날로
벼린 말은 날카롭다

쇳소리로 울리어서
추상같이 일어선다

한 목숨
내놓을 만큼
소릿결도 크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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