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덕우 인천시 역사자료관 전문위원.jpg
▲ 강덕우 인천개항장연구소 대표
인천시 중구 용동 163의 돌계단에는 ‘龍洞券番’(용동권번)과 ‘龍洞券番 昭和四年六月 修築’(소화4년 6월 수축)이라 새겨진 문구가 아직도 남아 있다.

 옛 신신예식장에서 용동으로 내려가는 골목 계단은 비록 지금은 샛길 정도이지만 이 근방에 있었던 한국 최초의 극장 협률사와 그 뒤를 이은 축항사, 애관극장 등의 역사와 관련짓다 보면 그냥 그렇게 외지에 덩그러니 존재했던 것만은 아닌 듯하다. 대략 가로 세로 190cm와 20cm 내외의 길이로 잘 다듬어진 아담한 계단은 소화4년 즉 1929년 수축됐음을 알리고 있는데 아마도 그 당시 용동권번의 호황과도 연관이 있는 듯하다.

 조선의 개항 이후 일본인이 급증함에 따라 일본인 거류지를 중심으로 일본 여인들의 매음행위가 은밀하게 성행해 묵인 내지 반(半)공인의 상태가 됐다. 조선에서의 유곽(遊廓)은 1902년 부산의 일본인 거류지역에 산재한 이른바 ‘특별요리점’이라는 업체를 한데 모음으로써 시작됐다. 그리고 그 유곽이 크게 번창하자 12월 인천 중구 선화동의 부도유곽, 1903년 원산, 1904년 서울에 유곽이 생겨났다. 유곽은 17세기 초반 일본의 공창제도(公娼制度) 하에서 법적 근거를 갖추고 국가권력의 허가를 얻어 성매매 영업을 하는 집결지였기 때문에 이는 곧 조선에서의 공창제도가 법적으로 확립되는 전초 단계였다.

 조선에는 본래 관기제도(官妓制度) 외에는 공창제도라는 것이 없었다. 조선시대 기생청은 기생을 관장하고 교육을 맡아보던 기관으로 가무 등 기생이 갖춰야 할 기본 기예는 물론 행의(行儀), 시, 서화 등을 가르쳐 상류 고관이나 유생들의 접대에 부족함이 없도록 했다. 그러나 관기(官妓)는 1907년부터 점진적으로 해체돼 1908년 9월에는 사실상 폐지됐다. 서울에 ‘기생조합’이 등장하는 것도 이 무렵으로 이후 1910년대 초반에 이르면 기생조합이 만들어졌고 인천에서도 ‘인천용동기생조합소(仁川龍洞妓生組合所)’가 탄생해 자체 운영비 마련을 위해 인천축항사(築港社)를 빌려 연극공연을 하기도 했다.

 기생들은 상업적 공간에서 영업을 하고 노동에 대한 물질적 보상을 받고 있었는데 이러한 기생조합은 1915년께부터 점차 일본식 명칭인 권번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권번(券番)은 원래 일본에서 게이샤들을 관리하는 업자들의 조합식 조직으로 노래와 춤을 가르치고 기생이 요정에 나가는 것을 관리하면서 화대(花代)를 받아 주는 따위의 매니저 구실을 하는 기구였다. 순서와 시간을 감독한다 하여 검번(檢番) 또는 권반(券班)이라고도 불렀는데 기생을 본격적으로 감독하고 관리하기 위해 일본식 제도를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1916년 3월 데라우치(寺內) 총독은 공창제도를 공포했다. 기생도 허가제가 돼 권번에 기적을 두고 세금을 내도록 했는데 단지 권번기생은 다른 기녀들과 엄격히 구분돼 있었다.

 1920년대 인천에서도 예기권번, 기예권번으로 호칭되더니, 1925년 11월 18일 ‘시대일보’에는 "그간 인천부 용리(龍里)에 있는 용동권번을 개축하고자 기금을 저축, 2층 양옥의 광대한 건물을 신축해 3일간에 걸쳐 자축 겸 낙성연을 개최"하는 기사가 있어, 이미 용동권번이 존재했음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이 용동권번은 인천의 옛 이름인 소성(邵城)을 따서 소성권번이라고도 불렀다. 돌계단의 축조는 이로부터 4년 뒤의 일인 것이다. 1935년께 인천에는 이미 2곳의 권번이 있었다 하나, 용동권번이라는 명칭은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다. 이후 인화권번과 인천권번으로 양립된 것으로 보이나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을 것이라 상상할 수 있다.

 개항 이래 인천은 소비와 유흥의 문화도 한몫했다. 용동권번과 인연을 맺었던 복혜숙, 이화자, 이화중선, 유신방 등 예술인도 적지 않았고 물산장려운동, 이재민돕기운동, 보통학교 운동장 확장비용 모금운동, 화재 피해자 돕기 자선연주 등 지역 사회의 일원으로서도 적극 참여했다. 그 옛날의 영화가 사라진 이곳엔 ‘글자에 철갑’을 두른 돌계단만 남아 있어 행인의 마음을 안타깝게 한다. 새로운 스토리텔링과 단장이 시급히 요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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