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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선신 농협대학교 교수
복잡하고 다원화된 현대사회에서 사회 구성원들이 각자의 ‘직분(職分)’을 다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동양의 예규범(禮規範)에서는 ‘직분’ 자체가 행위규범의 당위로 파악된다. 직분이란 어떤 직분 존재가 그 이름에 따라 ‘마땅히 해야 할 노릇’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자(孔子)는 그 직분을 ‘군군, 신신, 부부, 자자(君君, 臣臣, 父父, 子子)’라고 표현했다. 즉, 군주는 군주 노릇을 해야 하고, 신하는 신하 노릇을 해야 하고, 아버지는 아버지 노릇을 해야 하고, 자식은 자식 노릇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이 사회생활 관계에서 갖는 직분이 곧 ‘명(名)’이고, 그 명(名)에 상응하는 직분실현이 곧 ‘실(實)’이다. ‘명(名)’과 ‘실(實)’이 상부하는 경우를 정명(正名)이라 하고, ‘명(名)’과 ‘실(實)’이 상부하지 아니하는 경우를 허명(虛名) 또는 난명(亂名)이라 한다. 결국 공자의 정명론(正名論)은 생활 관계에서 각자에게 주어진 사회적 직분 책임을 다할 때 그 사물의 이름에 상응한 실(實)이 있게 돼 사회질서가 바로잡힌다는 것이다. 명과 실이 상부하지 아니하는 것을 상부하도록 일치시키는 사회개혁 작업이 공자의 ‘이름을 바로잡는다’는 정명론의 핵심사상이며, 그 개혁은 정치가 해야 할 일이므로 ‘정자정야(政者正也)’라고 말했던 것이다.

 요즘 많은 대학에서 ‘직업윤리’라는 과목을 개설하고 있는데, 이 과목은 산업 현장에서 필요한 인력양성을 위해 직무 수행에 요구되는 지식·기술·소양 등의 내용을 체계화한 소위 ‘NCS(National Competency Standards; 국가직무능력표준) 교과목’ 중 하나로 교육부가 권장하는 과목이다. 대학생들에게 이 과목을 가르치는 것은 꽤 중요한 의미가 있다. 왜냐하면, 요즘 우리나라의 학생들은 초·중·고 교육과정에서 ‘윤리와 법’에 대해 제대로 공부할 기회를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많은 과목들을 주입식으로 교육 받고 시험을 통한 경쟁에 내몰리다 보니 정작 중요한 ‘윤리와 법’에 대해서는 학습할 시간이 거의 없다.

 특히, 대학수학능력시험 사회탐구영역의 선택과목이 여러 과목(한국지리, 세계지리, 동아시아사, 세계사, 경제, 사회·문화, 한국사, 생활과 윤리, 윤리와 사상, 법과 정치 등)으로 구성돼 있고, 대부분의 학생들이 공부 부담이 적고 고득점하기 쉬운 과목을 선택하다 보니 ‘윤리와 법’에 관한 과목을 선택하는 학생들은 그리 많지 않다(이 과목이 개설되지 않은 고교도 있다). 참고로, 교육기본법 제2조는 "교육은 홍익인간의 이념 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도야하고 자주적 생활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함으로써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민주국가의 발전과 인류공영의 이상을 실현하는데 이바지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교육이념’을 규정하고 있다. 이를 감안하면, 고교 교육과정에 ‘윤리와 법’을 필수과목으로 채택하는 것이 ‘민주시민 양성’을 위해 바람직할 것으로 생각된다.

 요즘은 가정에서 이른바 ‘밥상머리교육’이 이뤄지기 힘든 점, 지도층 인사들이 직업윤리를 위반해 물의를 빚는 사례가 빈발하는 점, 갑질 사례가 횡행하는 점 등을 감안하면 ‘윤리와 법’ 내지 ‘직업윤리’에 대한 교육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점을 재삼 확인할 수 있다. 사회생활에서 사람과 사람은 ‘사회적 존재’로서 ‘사회적 이름’으로 만난다. 이러한 사회적 이름은 선생으‘로서’, 의사‘로서’, 구매자‘로서’, 시민으‘로서’의 존재라고 불리기 때문에 독일의 법학자인 마이호퍼(Maihofer)는 이 사회적 존재를 ‘로서의 존재(Als-Sein)’라고 명명했다.

 다양한 직업에 요구되는 각각의 직업윤리가 모두 중요하며 특히 ‘공정무사(公正無私)’를 실천해야 한다. 정치인은 정치인‘다워야’ 하고, 교육자는 교육자‘다워야’ 하고, 법조인은 법조인‘다워야’ 하고, 언론인은 언론인‘다워야’ 하고, 의사는 의사‘다워야’ 하며, 그 밖에 다른 직업인들도 마찬가지이다. 사회 구성원들이 각자 직분을 ‘명실상부(名實相符)’하게 다하고, 직업윤리를 지키면서 모두가 ‘이름값’을 하며 살아야 한다. 사이비(似而非)가 돼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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