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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사랑하면 행복할 것 같은데 사랑 때문에 때로는 힘이 들곤 합니다. 저 사람만 사귀면 행복할 것 같은데, 막상 그 사람 때문에 눈물을 흘리고, 정성을 다해 키운 아이가 조금 크면 사랑을 외면하는 바람에 또 눈물을 흘리는 게 삶인가 봅니다. 사랑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내가 정말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는가를 알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그 사람에게 못해준 것만 생각나면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는 것이고, 잘해준 것만 생각나면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전자는 이타적인 사랑이고, 후자는 이기적인 사랑입니다. 전자는 못해주었는데도 내 곁에 있어줘서 감사하는 마음이 들지만, 후자는 그 사람을 소유하고 조종하고 싶은데 말을 듣지 않아서 미움이 솟구쳤던 겁니다. 결국 그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을 때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 사람을 대하고 있을 때입니다. 어느 여고생은 안타깝게도 실명을 해서 아무 것도 볼 수가 없습니다. 2년 전 사고로 실명이 된 채로 학교를 다녀야 했습니다. 다행히도 학교 정문 앞까지 엄마가 늘 동행해주었습니다. 길을 걸을 때도 버스를 탔을 때도 엄마는 늘 딸의 곁을 지켰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말했습니다.

 "얘야, 이제 너 혼자 가거라. 이제 나도 일을 해야 해."

 무척 서운했습니다. ‘아무리 일이 급하다고 해도 앞을 보지 못하는 나를 혼자 가게 하다니!’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할 수 없이 더듬거리며 길을 나섰습니다. 때로는 길에서 넘어졌고, 때로는 버스 안에서 구르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소리 죽여 울었습니다. 그런 일을 당할 때마다 어머니가 그렇게도 미워졌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울면서 지내던 어느 날부터는 넘어지지도 않았고 울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적응이 된 겁니다.

 "두고 봐. 엄마 없이도 난 잘 살 수 있어."

 자기 일이 급하다고 자신을 학교에 혼자 가게 한 매정한 엄마가 미웠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교문 앞에서 경비아저씨가 딸에게 물었습니다.

 "학생, 학생 뒤를 줄곧 따라오신 저 아주머니가 학생 어머니가 맞지? 매일 이 시간이면 학생 등 뒤에서 눈물을 훔치고 계시던데."

 그 말을 들은 딸은 솟구치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랬습니다. 그렇게도 서운하게 여긴 엄마는 매일 버스정류장으로 더듬거리며 걸어올 때도, 버스에 탔을 때도 자신의 곁에 늘 계셨습니다. 언제일지 모를 엄마 없는 세상을 딸이 살아가려면 딸 스스로가 혼자 사는 법을 배워야 했기 때문입니다. 딸이 서운하다며 독을 품었을 그때도 엄마는 자신의 곁에서 숨죽이며 눈물을 훔치셨던 겁니다. 앞에서 이끄는 사랑도 가치가 있겠지만 때로는 이렇게 뒤에서 안타깝게 딸을 지켜보며 눈물짓는 사랑이 더 가치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교향곡의 아버지로 불리는 하이든은 한때 헝가리의 어느 공작의 궁정악단 악장이었습니다. 어느 날, 공작이 악단을 해체하겠다고 했습니다. 악사들 모두 실업자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이든은 짐 싸는 대신에 그동안 자신들을 돌보아준 공작을 위해 특별공연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는 경쾌하고 아름다운 선율로 이어지다가 후반부에는 어둡고 슬퍼지는 곡을 만들고 드디어 공연을 했습니다. 마치 이제껏 자신들을 지켜준 공작에 대한 고마움과 동시에 공작과의 이별의 슬픔을 노래하는 듯했습니다. 이 공연을 들은 공작은 자신의 결심을 바꾸었습니다. 이렇게 하이든의 ‘고별교향곡’이 탄생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든 고마워하는 마음이 사랑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상대에게 늘 힘이 되어주곤 합니다. 엄마 없이 홀로 살아야 할 딸을 위해 저만치 떨어져 눈물 흘리며 안타깝게 바라보는 엄마처럼, 그리고 비록 실업자가 될 신세이면서도 이제까지 사랑을 준 공작에게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 아름다운 곡을 만들어낸 하이든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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