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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영국 런던에서 초연된 연극 ‘에쿠우스’는 이듬해 브로드웨이에서의 폭발적인 반응과 함께 전 세계로 확산됐다. 이후 45년간 꾸준히 사랑받아 온 이 작품은 신선한 충격과 강렬한 메시지로 여전히 관객들을 매료시킨다. 1977년 제작된 동명 영화 ‘에쿠우스’는 원작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영화적 구성이 가미됐다.

 한 소년이 저지른 범죄가 지역사회를 뒤흔든다. 여섯 마리 말의 눈을 찔러 잔혹하게 살해한 이 끔찍한 사건의 중심에는 알란이라는 소년이 있었다. 그는 사건과는 어울리지 않는 작고 가냘픈 아이였다. 판사의 권유로 알란은 의사 마틴을 만나 정신과 치료를 받게 되지만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는 알란을 살펴본 마틴은 그가 ‘에쿠…’라 말하는 소리를 듣게 되고, 소년의 부모를 통해 말에 대한 특별한 관심이 있었음을 알게 된다.

 여섯 살 때 처음으로 말을 본 알란은 맑고 큰 눈에 빠져든다. 기수의 권유로 말 위에 올라타 바닷가를 질주한 경험은 알란에게 형언할 수 없는 자유로움을 느끼게 해 줬다. 하지만 이내 부모에 의해 끌려 내려오며 행복감은 좌절된다. 이후 알란은 말 대신 어머니에 의해 종교에 심취하게 된다. 하지만 무신론자였던 아버지는 아내의 신앙심이 아들에게까지 영향을 마치는 것이 달갑지 않았다. 이후 알란 방에 있던 예수의 그림이 뜯겨 나간 자리에 말 사진이 걸리게 되면서 알란에게 말은 신앙이자 사랑의 대상으로 변모해 간다.

 알란에게 예수는 세상을 구원한 영웅적인 존재이기에 앞서 가엽게 희생된 한 사람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이는 말을 볼 때 느끼는 감정과도 일치했다. 인간들이 고삐를 채우고 재갈을 물린 뒤 채찍질을 하며 자신들이 가고 싶은 곳으로 이리저리 이끄는 모습은 말의 자유와 가치를 훼손하는 것으로 인식됐다. 말의 강요된 희생에서 알란은 예수의 모습을 자연스레 투영하며 말을 자신만의 종교로 받아들인다. 말에게서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위안과 교감을 찾게 된 이면에는 알란 자신의 처지와 비슷하다는 동질감이 자리하고 있었다. 다소 강압적인 훈육 방식과 사회의 질서, 규범들은 그를 옥죄는 재갈이나 채찍과도 같았다. 그러나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말이 자신을 억압하는 기제로 작용하자 결국 분노한 알란은 말의 눈을 찌른다.

 ‘에쿠우스’는 말을 뜻하는 라틴어로, 이 작품은 법과 질서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획일성과 폭력성을 고발한다. 이와 함께 자연스러운 인간의 본능과 열정이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구별 짓기 속에 파괴되는 과정을 통해 현대사회에 많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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