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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훈 겨레문화연구소 이사장
사이버(Cyber) 공간에서 일어나는 여러 사건들이 큰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사건 내용에 따라서는 그 피해가 만만치 않지만 현실이 아닌 사이버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이라서 그런지 범죄행위라는 인식이 약하다. 그러다 보니 가해자가 문제의식이나 죄책감을 크게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진행된다는 특징이 있다.

얼마 전 김포시의 한 어린이집 보육교사가 여러 명의 인터넷 카페 회원들이 잘못된 정보를 진실인 양 카페에 공지하고 자신의 실명을 공개하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이 일어났다. 인터넷에 알려진 정보를 보고 어린이집에 찾아와 물을 끼얹고 보육교사의 잘못을 추궁한 학부모도 있었다니 수치감을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오래전 일이긴 하지만 SNS 게시판에 ‘지하철 막말녀’란 제목의 동영상이 화제로 떠올랐던 적이 있다. 지하철 전동차 안에서 젊은 여성이 노인으로 보이는 어른과 심한 욕설과 주먹다짐까지 하는 모습이었다. 어수선한 와중에도 누군가 싸우는 모습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해 인터넷에 띄우자 당장 수많은 네티즌들이 ‘지하철 막말녀’란 이름을 붙이고 댓글을 올리며 비난에 동참했다.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리고, 비난 대열에 동참하는 사람들도 그들이 이름을 붙이고 몰아붙인 이른바 ‘지하철 막말녀’와 폭력적인 면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공공장소에서의 기본예절이 무너지는 현장’을 고발하는 정의로운 사람처럼은 결코 보이지 않는다.

비슷한 시기에 ‘○○음식점 사건’도 한동안 인터넷을 달궜다.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고객이 인터넷에 글을 올리면서 알려졌고 트위터, 페이스북 등 SNS를 타고 인터넷상에서 빠르게 확산됐다. 음식점 종업원이 임신부에게 욕설을 하고 발로 걷어찼다는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네티즌들의 항의는 전국 규모의 프랜차이즈 식당인 그 식당에 대한 불매운동으로 즉각 이어졌다. 식당 측은 종업원이 임신부인 손님의 복부를 발로 찼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며 오히려 손님이 종업원의 머리채를 먼저 잡고 발로 종업원의 배를 가격했다고 주장했다. 누구의 주장이 맞는지는 차치하고라도 참 무서운 세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대형 서점의 식당가에서 한 여성이 어린아이의 얼굴에 뜨거운 된장국을 쏟고 별다른 조치도 없이 사라져 ‘된장 국물녀’라며 비난받은 사건도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아이의 어머니가 사고가 난 뒤 인터넷에 아들의 화상 사진을 올리고, 국물을 쏟아 화상을 입히고 사라진 가해자를 찾아 달라는 글을 올렸다. 이 글은 빠르게 퍼졌고 네티즌들은 사라진 여인을 ‘된장 국물녀’, ‘화상 테러범’이라고까지 부르며 매도했다. 하지만 공개된 CCTV를 통해 ‘여성이 국물을 그릇에 담아 돌아서는 순간 뒤쪽에서 달려오던 아이가 팔꿈치를 쳐 그릇을 놓쳤다’ 사실이 밝혀졌다. 사건의 진상을 잘 알지도 못하고 사이버상에서 ‘된장 국물녀’, ‘화상 테러범’이라고까지 매도당한 그 여성의 명예는 어디에서 찾을까?

정치권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매크로(macro)를 이용해 여론을 조작했다며 법의 심판을 받은 사례도 있고, 지금도 진실을 가린다며 치열한 소송을 벌이고 있는 경우도 여럿이다. 선거기간은 물론 평소에도 사이버 공간에 숨어 ‘팩트(fact)’와는 상관없이 무차별 인식공격을 하는 일이 비일비재(非一非再)하다 보니 맑아져야 할 정치권이 점점 혼탁해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요즈음 ‘팟 캐스트(Pod cast)’라는 개인 미디어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기존 라디오나 TV 프로와는 다르게 방송시간과 상관없이 자동으로 업데이트되는 프로그램을 자신의 휴대전화로 내려받아 아무때나 보고 들을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비속어를 거침없이 쓰는 것은 물론 정제되지 않은 말들을 마구 쏟아내 청취자들의 관심을 끌기 때문에 일부 팟 캐스트는 대단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앞으로도 더 많은 팟 캐스트 형식의 개인 미디어들이 수없이 등장할 것이고, 더 많은 문제점들도 드러날 것이다. 그러다 보니 사실이 아닌 거짓 정보가 무차별적으로 공개되고, 그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인권침해나 사회적 파장이 적지 않을 것이다. 사실이 규명되기도 전에 더 빨리, 더 폭넓게, 걷잡을 수 없이 번져서 어느 한쪽에게는 심각한 피해를 입힐 수도 있을 것이다. 뒤늦게 진상이 밝혀진다 해도 회복 또한 쉽지 않을 것이다. 실제 인물이나 실명을 사실 확인이 안 된 글들과 함께 마치 사실인 것처럼 사이버 공간에 올리는 일은 되돌리기 어려운 폭력행위임이 분명하다. 그런 행위를 스스로 해도, 퍼 나르는 경거망동(輕擧妄動)도 절대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어느 순간에 그 피해자가 바로 나 자신일 수도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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