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90년 3월 군번이니 30여 년 전쯤 일이다. 자대 배치를 받고 달포가량 지났을까. 중대장이 중대원을 모두 불러 모은 자리에서 A4용지 한 장씩을 돌렸다. 빈 종이를 받아 들고 어리둥절해 할 틈도 없이 중대장은 이내 용도를 설명했다. 건의할 내용이 있거나 부당하다고 여기는 점이 있으면 가감 없이 적어내라는 거였다. 건의사항은 즉시 수용하고, 부당한 일은 곧바로 시정하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중대 왕고참 중 한 명은 "특히 신병들은 익명이 보장되니 하고픈 얘기 있으면 망설이지 말고 다하라"며 거들었다. 이름하여 소원수리(訴願受理)였다.

입대 전 말로만 들었던 군생활과는 딴판이었다. 가정이나 학교에서도 하고픈 얘길 다 못하는데 어떻게 ‘숨도 제대로 못 쉰다’는 군대에서 이 같은 일이 가능할까. 믿기지 않았지만 굳게 믿었다. 아니 믿고 싶었다. 해서 거침없이 빈 종이를 채워나갔다. ‘쫄따구’들만 점호 준비를 하는 건 부당한 만큼 전투화 정비나 개인화기 손질은 각자 하자느니, 전투축구를 할 때 이병도 슈팅을 할 수 있게 해달라느니 하며 한 달여 동안 보고 느낀 부당함을 빠짐없이 적었다. 다음날 아침까지만 해도 소원수리한 내용들이 시정되리라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기자의 순진함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간밤에 기자를 포함한 신병 3명을 빼고는 열외없이 몽둥이 찜질을 받았다는 얘길 바로 위 고참에게서 전해들었다. 두말할 나위 없이 기자의 소원수리 내용이 빌미가 됐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날 실제로 소원수리를 적어낸 중대원은 3명뿐이었다. 그 중에서도 오직 기자만 ‘불평불만분자’였다. 그때부터 기자는 관심사병이자 꼴통이었다. 맞아 죽을 각오를 하고 타 중대와의 축구시합에서 중거리 슛을 날려 결승골을 뽑기 전까지는 말이다.

군대 소원수리와 직접적으로 비교하는 건 무리가 있긴 하지만 용인시의회에서도 이상야릇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다. 소신껏 하라며 초선의원들을 격려하는 다선의원들이 있는가 하면 한편에선 초선의원들의 의정활동을 사사건건 통제하려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상임위원회 조례안 심사 전 언론 인터뷰는 자제해 달라"는 얘기가 공개석상에서 나올 정도면 알조다. 하고픈 말 다 하라며? 소신껏 하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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