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은 사람을 흉내 내지만 사람처럼 자유롭지 않습니다. 관절이 꺾이는 정도의 움직임은 구현할 수 있지만 얼굴 표정이나 미세한 동작은 따라 할 수 없죠. 여기부터 인형극의 매력이 시작됩니다. 결여된 상상력, 즉 여백의 미를 발휘하기 때문이죠."

 조현산 대표의 변(辯)이다. 인형이 사람과 똑같이 작동한다면 굳이 인형극을 만들 필요도 없지만, 그렇지 않기 때문에 인형극을 한다. 소위 베스트셀러인 ‘책’을 ‘영화’로 제작했을 때 영화가 반드시 흥행에 성공하리란 보장이 없는 것과 비슷한 이치이다.

 "우리가 책을 읽을 때는 완벽한 상상력을 발휘합니다. 이미지를 떠올리죠. 그래서 좋은 텍스트를 지닌 책일수록 인기를 끌 확률이 높습니다. 그런데 이 이미지는 꼭 같지 않습니다. 각자마다 조금씩 다르죠. 이를 시각적으로 표현한다는 게 참 어려운 일입니다." 인형이 텍스트의 기능을 발휘한다는 설명이다.

 우연히 인형극에 뛰어들었지만 연륜을 얕볼 수 없다. 조 대표의 진술(陳述)은 30년 가까이 인형극을 해 온 그의 철학이자 예술무대 산이 주목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대변한다.

14-2.jpg
▲ 야외에서 펼쳐진 예술무대 산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 상주단체로서 다양한 경험 ‘강점’

 2001년 창단한 예술무대 산은 2014년부터 현재까지 의정부예술의전당에 ‘입점’해 있다. 2011년 양주문화예술회관을 통해 공연장 상주단체로 자리매김했던 예술무대 산은 상주단체로서의 장점을 극대화해 왔다.

 "양주문예회관의 경우 공간이 좋았습니다. 인근에 허허벌판이 많아 이를 통해 여러 가지 실험을 해 봤죠. 야외극이자 일종의 축제와 같은 작품들을 구상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기획력은 좀 떨어질 수밖에 없었죠. 이에 반해 의정부예술의전당은 프로모션이 강점입니다. 물론 상주단체로서 공연장 곳곳을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도 갖고 있고요."

14.jpg
▲ 비언어 이미지극으로 선보인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 모습
 조 대표와 함께 동고동락한 오정석 기획실장은 예술무대 산의 살림꾼이다. 상주단체로서 둥지를 틀기 전 남양주의 한 스키장 공간을 비시즌 동안 수년간 빌리기도 했던 예술무대 산의 산증인이다.

 오 실장의 집이 의정부인 터라 창단 당시 의정부 어느 한 지하 49.5㎡ 남짓한 사무실을 빌려 시작한 예술무대 산은 가까운 포천시에 인형제작실이 있다. 어찌 보면 돌고 돌아 애초부터 의정부에 말뚝을 박을 운명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 작품 특색 찾아 골라보는 재미도

 예술무대 산의 작품들은 저마다의 ‘포인트’가 있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비언어 이미지극으로 태어났고, ‘선녀와 나무꾼’의 경우 인형 자체에 공을 들였다. 다른 작품들의 인형도 공을 들이기 마찬가지이지만 ‘선녀와 나무꾼’은 6m의 대형 줄인형에 나무꾼의 몸통은 커다란 새장처럼 꾸몄다. 전시도 가능한 규모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공연이 아닌 공간을 만든다. TV와 스마트폰에 길들여진 아이들에게 상상력과 함께 창의력을 안긴다.

‘견우와 직녀’(실 한 가닥)는 초창기 30분 남짓한 야외 무용 퍼포먼스였으나 최근 서사를 덧붙여 한 시간여의 실내 공연으로 거듭났다. 공식적인 협업은 아니지만 역시 도내 공연장 상주단체인 서울발레시어터의 무용단원을 초빙해 완성도를 높였다. 이 작품에 녹아든 의미 중 조 대표의 설명이 흥미를 끈다. "견우와 직녀의 사랑 이야기이지만 그때는 옥황상제가 강제로 갈라 놓잖아요. 그런데 요즘은 스스로 사랑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아요. 이런 점을 담아내고 싶었습니다."

14-3.jpg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인형을 조정하는 배우들.
 조 대표는 예술무대 산의 상징적인 작품으로 오랜 고민 끝에 ‘달래 이야기’를 꼽았다. 인형과 오브제, 연극, 마임, 한국무용, 그림자극, 영상 등 다양한 매체가 집약된 작품으로 전쟁의 포화 속 어린 달래를 조명한다.

 조 대표는 "‘달래 이야기’를 통해 많이 알려졌고, 오래된 작품일수록 (섬세한 표현이)어렵다. 배우들도 가장 긴장을 많이 하는 작품이기도 하다"며 "예술무대 산이 추구하는 색깔을 잘 보여 주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 이유 있는 러브콜…플랫폼 야심

14-1.jpg
조현산 대표
 조 대표의 말처럼 ‘달래 이야기’는 효녀·효자 작품이다. 2008년 초연된 이 작품은 이듬해 일본 초청을 받는다. 이는 일본 전국투어로 이어졌고, 스페인과 프랑스에서도 러브콜을 받아 공연했다. 예술무대 산이 가장 힘들어 할 시기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이를 계기로 예술무대 산은 다른 작품까지 조명받으며 1년 평균 3∼5회 해외 초청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예술무대 산은 조 대표와 오 실장을 포함해 10여 명의 상주단원이 있다. 상주단원이 있다는 건 반복적인 훈련을 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인형극이지만 결국 이 인형을 조정하는 것은 사람이기 때문에 배우의 역할이 중요하다. 노하우가 쌓이면 안정적인 작품을 내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인형극단이 많지 않은 국내 현실에서 예술무대 산의 구조는 그래서 선순환이다.

 1990년대 초반, 친구의 요청으로 단순 아르바이트라 생각했다가 인형극에 빠졌다는 조 대표는 그의 욕심보다는 인형극 자체에 대한 애착이 더 큰 듯하다.

 "예술무대 산이 국내 인형극단의 플랫폼으로 나아갔으면 합니다. 제가 해서가 아니라, 예술무대 산이 해서가 아니라 예술무대 산이라는 매개가 인형극단의 플랫폼과 연결돼 인형극을 사랑하는 누구나가 잘 할 수 있도록 그렇게 됐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노력할 것입니다."

775807_237148_5024.jpg

 박노훈 기자 nhp@kihoilbo.co.kr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