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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이라 불리는 작품에는 시간을 초월한 힘이 있다. 후대에도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 생각에 깊이를 더해 주는 작품들은 고전이 된다. 노르웨이 극작가 헨리크 입센의 희곡 ‘인형의 집’은 1879년 초연 당시 남편과 아이들을 뒤로하고 자아를 찾기 위해 가출하는 여성을 그렸다는 점에서 논쟁이 됐다. 하지만 그러한 결론에 이르기까지 주인공 노라가 겪어야 했던 가정과 사회의 위선과 보이지 않는 폭력은 관객들에게 개인의 존재와 삶의 의미에 대해 많은 질문을 던지며 보수적이던 당시 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줬다. 오늘 소개하는 영화는 동명 연극을 각색한 작품으로 1973년 개봉됐다. 원작에 가깝게 재현된 이 작품은 130년 전 과거를 소환하고 있지만 메시지의 힘은 시대를 초월한다.

 세 아이의 어머니인 노라에게 올해 크리스마스는 특별했다. 다가올 새해에 남편이 은행장으로 취임하기 때문이다. 트리 장식으로 여념이 없던 어느 날 손님이 방문한다. 해고통지서를 받은 변호사 크로그스타드는 자신의 복직에 노라가 영향력을 행사해 줄 것을 강요한다. 사실 노라에게는 말 못할 비밀이 있었다. 아픈 남편의 요양비를 마련하기 위해 고리대금에 손을 댄 것인데, 남편 헬메르는 돈을 빌려 쓴다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성격이었기 때문에 노라는 문서를 위조해 돈을 융통했다. 그때 관여된 사람이 바로 크로그스타드로, 그는 해고당할 위기에 처하자 과거사를 폭로하겠다며 협박에 나선다.

 최대한 남편이 모르는 선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고 싶었던 노라였지만 결국 모든 사실이 밝혀진다. 이에 남편 헬메르는 노라를 강하게 비난하며 욕을 퍼붓는다. 자신의 명성과 창창한 앞날에 먹칠을 했다며 거칠게 몰아세우는 상황에서 노라는 자신의 위치를 깨닫게 된다. 비록 위서의 죄가 있긴 하나 여성에게 돈을 빌려주지 않는 당시의 법 체제상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온갖 모욕적인 언사를 들어야 했던 노라는 자신이 이 집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인형과 다를 바 없음을 깨닫고 집을 떠난다.

 이 작품은 당시 가부장적 질서와 세계관이 여성에게는 얼마나 억압적이고 폭력적일 수 있는지를 고발하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한 발 더 나아가 여성과 남성이라는 이분법적 대립을 넘어 인간을 가둔 틀을 벗어나 하나의 온전한 인격체로 자신과 주변을 바라보길 권하고 있다. 연극과 영화 모두 주인공 노라의 억울한 상황에 눈이 더 가고 공감되는 것은 사실이나 남편 헬메르 또한 당시 사회적 규범의 피해자였음을 보여 주고 있다. 남자는, 남편이자 아버지는 언제나 집안의 경제를 책임지며 어떠한 일이 있어도 명예를 더럽히면 안 된다는 인식이 그를 키웠고 성장시켰다. 헬메르 역시 자신을 키운 세상의 규율과 세계관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바, 그와 그의 가족이 와해되는 핵심에는 사회가 바라보는 시선의 감옥이 존재함은 부정할 수 없다.

 ‘인형의 집’은 여성 해방 작품으로 널리 사랑받고 있지만 비단 여성만이 아닌 남녀 모두 사회가 제시한 프레임에 갇혀 살기 보다는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먼저 확립하는 것이 인간의 의무라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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