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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기문 변호사
최근 우리 사법부는 위기를 맞고 있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일어난 사법 거래 의혹을 둘러싸고 일어난 일들에 대한 진실이 연일 밝혀지면서부터다. 믿고 싶지 않는 일들이 현실로 일어났다는 사실에 대해 아연실색할 뿐이다. 이러한 사태에 대한 전국 법관대표자 회의의 결과도 회의록과 같이 공개됐다. 탄핵소추의 대상이 돼야 할 중대한 헌법위반이라는 점에 최종 의견이 모아졌다.

논의의 초점은 사법부 안에서 탄핵소추를 촉구하는 것이 적절한지 여부에 모여졌다고 한다. 탄핵소추는 입법부의 권한인데, 간접적으로 의견을 전달하는 것에 대한 적절성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는 것이다.

법관대표자 회의에서는 이번 사법 농단의 주체로서의 법원이 자기선언을 통해 상부의 지시에 의하지 않고, 독립적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계기를 삼아야 한다는 의견도 표출이 됐다.

내부 간의 갈등인지 아니면 국민의 신뢰를 담보받기 위한 몸부림인지에 대한 토론이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탄핵촉구를 통한 법관들의 진정성을 보여주고 국민 신뢰를 받아야 한다는 의견들이 속출됐다.

이와 같은 사법농단의 핵심에는 양승태 대법원장의 상고법원에 대한 욕심이 자리 잡고 있다. 상고법원을 설치할 것인지 아니면 현행대로 대법원 시스템을 유지할 것인지가 문제였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상고법원 설치를 기정사실화 하면서 이를 위해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과 입법부의 대표적인 의원들에 대한 로비를 시도했다.

사실상 상고법원제는 국회의원들이 입법적으로 해결해야 할 국정 과제 중 하나로 던져 주는 것으로 족했다. 하지만 양승태 대법원장은 상고법원제도를 도입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과욕이었다. 이것이 그동안 사법농단이라는 이름으로 회자되는 사법 거래를 한 것으로 평가된 것이다.

임종헌 전 차장이 구속됐다. 임종헌 전 차장을 비롯해 이인복, 박병대, 고영한 대법관 등이 수사 대상에 올랐다. 사법부 치욕의 역사이다.

그렇다면 이 지점에서 상고법원제 도입이 과연 진정한 선이었는가를 살펴야 한다. 그리고 상고법원제 도입을 위해 취했던 행동들이 과연 진정한 선으로서, 이를 따르는 것 또한 선한 행동이었는가?

일부 대법관들은 양승태 대법원장이 추진하는 상고법원제를 위해 함께 노력한 것으로 보이고, 이를 위해 도대체 있어서는 아니 되는 사법 거래를 한 것으로 보인다. 일부 법관들은 이를 직권남용의 객체로서 자신들은 상부의 지시에 따른 것일 뿐이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소위 위에서 시켜서 했다는 논리이다.

사법부의 수장인 양승태 대법원장이 최고 권력자의 로펌으로서의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하급심에 대해 특정한 주문을 강요하기도 하고, 청와대의 요구에 의해 심의관과 연구관들이 법적인 쟁점을 정리해 최고 권력자가 요구하는 방향으로 법 논리를 개발하고, 판결문에 특정한 이유를 삽입하게 하는 등의 행위를 자행한 것이다.

1933년 나치가 정권을 장악하자, 프랑스를 경유해 미국으로 망명한 한나 아렌트가 저술한 「인간의 조건」이라는 책의 일부 내용이 기억난다. "생각하는 일은(…)정치적 자유가 있는 곳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며, 그렇게들 한다.

그러나 저명한 학자들이 보통 말하는 것과는 다르게, 참으로 불행히도 생각하도록 하는 힘은 인간의 다른 능력에 비해 가장 약하다. 폭정 아래에서는, 생각하는 일보다 생각하지 않고 행동하는 일이 훨씬 쉽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일부 대법관과 일부 판사들은 사법부 독립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생각하지 않고 행동했다. 폭군으로서의 양승태 대법원장의 모습 때문이다. 상고법원제 도입이 최선이라는 생각으로 밀어붙였다.

한나 아렌트는 1961년 12월에 열린 아이히만 재판을 직접 재판정을 지켜보면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이름의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 보고서에서 아렌트는 피고인석의 아이히만으로부터 "실제로 저지른 악행에 비해 너무 평범하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아렌트가 본 아이히만은 피에 굶주린 악귀도, 냉혹한 악당도 아니었다. 그냥 우리 주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중년 남성이었다. 어떤 이념에 광분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는 다만 스스로 생각하기를 포기했을 뿐이었다고 적었다. 아이히만은 "나는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는 칸트까지 인용하며 명령은 지키는 것이 도리라고 말했다고 적었다.

여기서 아렌트는 아이히만 자신이 저지른 일과 자신의 책임을 연결 짓지 못한 채 사람 좋은 웃음을 짓고 있는 아이히만에게서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라는 개념을 이끌어 냈다. 악이란 뿔 달린 악마처럼 별스럽고 괴이한 존재가 아니며, 사랑과 마찬가지로 언제나 우리 가운데 있다는 개념으로 풀어냈다.

양승태 대법원장 주변의 사람들은 바로 이러한 논리를 펴고 있는 것이 아닐까? 법관이 가야할 사법부 독립의 높은 헌법적 가치를 생각하지 않고, 상고법원 도입이라는 광기 앞에 모두를 휩쓸려 가버리게 했다.

법관들이 현재 사법거래를 멈추고 국민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사법부 독립의 가치를 어떻게 지켜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그 생각을 실천해내는 길뿐이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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