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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덕우 인천개항장연구소 대표

중구 경동에서 경인전철 다리 아래를 지나 동구 금창동 초입에 이르면 중앙시장 앞에 ‘배다리’가 나온다. 이곳에는 19세기 말까지 동구 화수동 괭이부리에서 수문통을 거쳐 지금의 송림초등학교 앞까지 흘러오는 커다란 갯골이 있었는데, 밀물 때면 이곳을 따라 인천 앞바다의 바닷물이 밀려 들어왔기 때문에 경인철도가 가설되기 전까지 배를 댈 수 있는 다리가 놓여 있었다고 한다. 부두에서 선박에 닿을 수 있도록 만든 구조물(잔교:棧橋)이 마치 다리 모양의 형상이었던 것에서 그 지명이 유래하였음을 추측할 수 있다. 지금은 모두 복개돼 그 갯골도, 다리도 전혀 흔적을 찾아볼 수 없지만, 이곳을 아는 사람들은 1950년대 말까지도 밀물 때면 주변에서 갯내음이 풍겨오고 갈매기도 몇 마리씩 날아왔다고 전하고 있다.

 인천이 개항한 이래 1883년 일본조계, 1884년 청국조계 및 각국조계가 형성되면서 이곳 배다리 일대(현재의 금창동, 송림동)는 조선인 주거지로 진입하는 초입이면서도 ‘새로운 인천’의 ‘변두리’에 해당하였다. 청일전쟁 개전 직후 경인철도 부설이 확정지어지자 이곳은 교통의 요충지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는데, 1897년 우각현에서 거행한 경인철도 기공식은 이를 예고하는 것이었다. 이 언덕길 옆 소나무로 덮힌 넓은 산을 독점하고 있는 알렌별장이 들어서게 된 것도 이러한 추세를 반영한 결과였다.

 1899년 우각역이 만들어지자 이 지역은 철도 개통으로 동서로 분리되었지만 교통의 요지로 발전하였다. 또한 새로운 공업지대로 발돋움하면서 인근의 땅값이 상승함에 따라 새롭게 주목받는 지역이 될 수밖에 없는 입지적 조건을 가지게 됐고, 소수의 이방인이 대다수의 토지를 점유하는 속에서 조선인 노동자들이 대거 운집해 있던 형태가 되었다. 경인철도 개통된 지 15년 후의 신문기사이기는 하지만, 매일신보 1915년 2월 14일자에는 "배다리시장(우각리시장)을 살펴보니 어쩌면 그 같이 사람이 어떻게 모여들었는지 한번 들어갔다가 나오기도 매우 곤란하였다"고 할 정도로 이 시기 우각리와 금곡리(금창동), 송림리의 초입에 해당하는 배다리는 사람이 모이는 조선인 마을의 중심지로 기능하였다.

 1892년 서구식 사립교육 발상지인 인천영화여학교가 설립되고 이어 남학교가 생긴 이래 1907년 애국지사 정재홍이 설립한 천기의숙과 인천공립보통학교(현 창영초등학교)가 우각리에서 개교했다.

 또한 산업공간으로 변화하였는데 우각리 정미소와 양조장, 송림리의 햄공장과 양조장 등이 들어서면서 수도권에 생활필수품을 공급하는 경공업지역으로 탈바꿈하게 됐다. 인천부의 외곽이었던 이 지역이 새로운 공업지대로 발돋움하면서 이방인들에 의해 크게 주목받게 됐던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1919년 3월 6일 인천공립보통학교(현 창영초등학교)의 3~4학년 학생들은 학교를 박차고 나와 인천공립상업학교(현 인천고등학교) 학생들과 합류하여 배다리를 거쳐 시가지를 돌며 시위했다. 배다리 문화권역에서 점화된 3·1만세운동은 이후 인천시 전역으로 확대되는 계기가 됐다. 또한 1920년대부터 인천의 기간산업이라 할 수 있는 정미소, 성냥공장 및 부두 노동자들의 노동쟁의가 끊임없이 시작됐는데, 이 시기의 노동운동은 일제와의 대결이라는 민족주의적 성격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었다.

 배다리는 서울로 가는 길목이었고, 인천 사람들이 모여드는 터전이었다. 광복 후 배다리 일대는 인천에서 제일 볼 만한 시장이었을 뿐만 아니라 당시 인천 문화예술인들의 삶터이자 활동공간이었다. 대하소설 「토지」의 작가 고 박경리 선생이 20대 시절인 1948년, 이 동네에서 2년간 헌책방을 운영했던 것도 우연이 아닌 듯하다. 배다리 헌책방의 역사는 아마도 이 시기를 즈음해서 형성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이는데 연배 있는 인천 시민이라면 한번쯤은 들렀던 추억의 공간일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반세기가 지난 지금 배다리는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도시 전역에 부는 도시재생, 재개발, 도시환경 정비사업 등의 ‘명분’이 우선된다 해도, 이 지역이 갖는 ‘역사성’이 그보다 더 우선이 되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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