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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종현 전 SK네트웍스 중국사장
# 링컨과 유머

미국의 국부는 흔히 조지 워싱턴, 토마스 제퍼슨, 애이브러햄 링컨, 테오도르 루스벨트 등 4명의 대통령을 국부(Founding Fathers)로 추앙하고 있다. 그 중 제일로 꼽는 분은 각자마다 큰 업적이 있지만 남북전쟁을 승리하고 노예해방을 통해 미국의 다민족국가를 완성한 링컨(1861~1865 대통령 재임)을 가장 중요한 인물로 꼽고 있다.

 링컨 대통령은 잘 알려진 대로 가난해 정규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으나, 독학으로 변호사가 됐고 당시 불어 닥친 샌프란시스코 금광개발 붐에 편승한 철도 관련 계약으로 엄청난 성공을 한 신인 정치인으로 각광받게 됐다.당시 공화당 최고의 대통령 후보인 더글라스 상원의원은 신인 정치인인 링컨에게 말은 잘하지만 실제는 철도계약과 관련해 폭리를 취한 타락한 이중 인격 정치인이라는 의미에서 두 얼굴을 가진 사람으로 막말 비난을 했다. 링컨은 이때 슬기롭게 "저도 두 얼굴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이 보다시피 오죽했으면 저도 이 얼굴로 다니겠습니까?" 라고 응수했다. 상대방의 막말을 자신의 외모가 부족한 면을 어필해 서민의 이미지를 굳히는 동시에 대중의 열광적 환호를 받으며 그 결과 막말을 일삼은 더글라스는 거의 정치 인생을 마감하고 링컨은 정치신인에서 일약 미국의 최고 대통령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됐다.

# 처칠과 유머

 미국 현대사에 링컨이 있다면 영국 현대사를 완성한 정치 지도자는 단연 윈스턴 처칠 수상(1940~1945, 1951~1955 영국 총리 재임)이다. 처칠 수상은 영국인들에게 엘리자베스 1세(1533~1603), 아이작 뉴턴(1642~1727), 셰익스피어(1564~1616) 등과 더불어 영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인데 현대사에서 영국 국민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은 단연 처칠 수상이다. 특히 영국이 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세계 패권국의 지위를 미국에게 넘겨주며 자칫하면 2류 국가로 전락할 수 있는 위기를 잘 극복하고 지금까지도 유럽의 중심 국가로 남는데 기여한 처칠의 공로는 영국인 가슴속에 깊이 남아 있다. 보수당의 처칠 수상은 뛰어난 유머 감각의 소유자였는데 당시 정적인 노동당의 애틀리 당수가 화장실에서 바로 옆자리로 접근하자 처칠 수상은 소변을 보다가 얼른 다른 자리로 이동했다. 이를 본 애틀리 당수가 왜 멀리 가냐고 물어보자 처칠은 태연히 당신들은 큰 것만 보면 국유화하자고 주장하는데 내 것을 혹시 보면 국유화하자고 할지 몰라서 그랬다고 응수했다. 당시 처칠 수상과 애틀리 당수는 대형 기업의 국유화와 관련해 큰 정치적 대척점에 있었는데 이를 슬기롭게 넘긴 처칠의 유머는 지금의 영국이 제2차 대전 상처를 씻고 유럽의 중심 국가로 자리잡는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 정치선진국의 정치 유머 특징은?

 정치 유머는 앞의 링컨 대통령과 처칠 수상의 사례에서 보다시피 상대방에 대한 인격을 존중하면서 자기 자신의 생각을 대중에게 어필하는 고도의 정치 행위인 동시에 대중에게는 정치인의 지도력을 평가받는 중요한 잣대임에 틀림이 없다. 경우에 따라서는 막말 공격에 대해 슬기로운 유머로 대처하는 미국과 영국 지도자의 노련함은 이래서 미국과 영국이 정치 선진국이구나 하는 감탄을 하게 만든다.

# 정치 유머 회복을 위한 한국의 과제

 최근 촛불 정부 출범 이후 나는 진보, 보수 어디를 막론하고 정치 유머를 접해 본 기억 자체가 없으며 국회청문회, 여야 정당의 대변인 논평 등은 거의 막말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정치 유머는 상대방을 대화의 상대로 인정하며 자신과의 정치적 입장 차이를 슬기롭게 대중에게 어필하는 과정인데 우리의 수준이 이에 훨씬 못 미치는 점은 상대편에 대한 존경과 신뢰가 없이 단순한 진영 논리에 머무르는 한국 정치의 단면을 잘 보여주고 있다.

 또 하나는 유머는 시사성을 잘 반영한 사회적 이슈를 대중에게 전달하는 과정인데 한국 정치인들의 대부분은 시사 이슈를 발굴해 대중과 소통하는 성찰 능력이 거의 없고 단순히 투쟁성으로 정치활동을 일관해온 정치구조와 정치 엘리트 선발과정의 후진성에도 기인한 바가 크다고 볼 수 있다. 유머보다는 막말이 판치는 한국 사회의 선결 과제는 상호 간의 신뢰회복이 중요하다. 서로가 상대를 공산주의자, 적폐세력으로 매도하는 상황에서 미국, 영국과 같은 고급 정치 유머는 어쩌면 허황된 꿈일지도 모른다. 나는 우리 자손에게 물려 줄 한국 정치의 미래상으로 통일된 한반도에서 정치 유머를 통한 사회 통합을 이룬 나라로 발전해야 한다는 생각인데 현재의 정치인들은 이 같은 지역 간, 사회계층간 갈등을 즐기는 듯도 하여 답답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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