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 인천대 외래교수.jpg
▲ 김준기 인천대 외래교수
유사 이래 인간 사회에 경쟁이 없는 곳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생태계에도 약자에 대한 연민이나 동정심은 발 붙일 수 없으며 먹고 먹히는 거친 약육강식과 격렬한 생존경쟁만 횡횡할 뿐이다. 식물도 자신이 살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종류가 다양한 에이즈 바이러스조차도 서로 경쟁하며 치열하게 생존을 도모한다. 동물뿐만 아니라 사회적 동물로 살아가는 인간에게도 경쟁은 필연적이고 숙명적이다. 그런데 이 경쟁에 이념적·집단적 평등주의가 개입하면 공정성은 조작되고 공평성은 훼손된다. 평등주의는 물론 사회적 차원에서 불공정성에 대한 견제와 경각심을 유발시키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이권이 개입된 정책과 관련해 국가 관리하의 자원 배분과 기회 부여에 있어서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기준이 적용되지 않으면 정부와 집권당은 국민들로부터 매서운 책임 추궁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또한 평등주의는 개개인에게 경쟁의식을 부추겨 성공에 대한 열정과 자기 발전에 대한 의욕을 고취시킨다.

 한편 IMF 외환위기를 벗어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던 금모으기 운동 또한 평등주의에 입각한 국민들의 공익적 태도에 기인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평등주의가 갖는 장점 이면에는 평등화의 함정이 도사리기도 한다. 국가주의적 평등이 공정의 가면을 쓰면 그 공정은 변질되고 부패하기 쉽다. 이러한 경쟁은 공정성을 상실하고 그 결과에 대해 의혹과 불신을 야기하며 결국 심각한 사회적 갈등을 유발시킨다. 소득주도성장과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협력이익 공유제, 분양원가 공개 등은 모두 불공정한 포퓰리즘적 평등주의에 다름 아니다. 여기에 대한민국은 정규직의 고용 세습까지 평등주의에 가담하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정부는 등 돌린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신용카드 수수료를 대폭 인하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제 그 손해는 고스란히 카드사와 일반 소비자들의 몫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예컨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해 주는 것이 평등이라면 정규직의 정원을 늘려서 정규직을 공채로 선발하는 것이 공정이다. 재래 상설시장을 살리기 위해 소비자들의 불이익과 불편을 철저하게 도외시한 채 대형마트의 영업시간을 제한하는 것이 평등이라면 재래 상설시장이 과거 5일장과의 경쟁에서 소비자들의 선택으로 살아남은 것은 공정 경쟁의 결과이다. 그 공정성이 현재 정치적 매표(買票) 행태에 밀려 대형마트의 영업시간 규제로 변질된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20년간 노력해 온 김치 세계화는 이미 물 건너 갔다. 한국 김치가 세계 시장에서 일본 김치를 이기기 위해서는 대기업의 기술 투자와 유통망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치는 이제 생계형 적합 업종으로 지정돼 순대, 떡볶이 등과 함께 국내 골목시장을 더욱 굳건하게 지키게 될 전망이다.

 설령 대기업이 그동안의 경제성장 과정에서 경쟁의 공정성을 훼손시킨 측면이 있다 해도 이 강자가 나서야 일본도 극복하고 세계 시장도 장악할 수 있으며 양질의 일자리도 늘릴 수 있다. 그 사실을 대한민국의 낭만적 이념주의자들만 의도적으로 애써 외면하고 있는 듯하다. 투명하고 치열한 경쟁이 가능하고 노력한 만큼의 성과가 충분한 보상으로 주어지는 사회가 공정사회다. 자격으로 견주고 실력으로 겨뤄 이기는 사람에게 일자리의 기회가 돌아갈 수 있어야 개인도 발전하고 경제도 성장하고 국가도 진보한다. 더불어 이러한 토대 위에서 성공 신화도 나오고 부자도 만들어진다.

 노조끼리, 가족끼리, 친인척끼리, 거기에 낙하산으로 일자리를 나누어먹는 사회에 정의가 존재할 리 만무하다. 기회의 평등은 공정한 과정에서 비롯되며 이러한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정의로운 결과가 가능해진다. 공정의 기본적 가치는 법치와 자유이며 이 두 가지 조건하에서 국민은 국가를 믿고 최선을 다해 경쟁에 참여하고 그 결과에 승복한다. 행복이 성적순은 아니지만 성적이 아니고는 그 어떤 잣대로도 노력의 성과와 성실의 증거를 판단할 수 없다. 성적이 경쟁의 근거이자 대가의 절대적 조건이 될 수 있어야 공평하고 올바른 세상을 만들 수 있다. 그 세상이 사회주의가 아닌 자유민주주의 체제라면 말이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