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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 소장

요즘 중국에서는 50여 년 전의 인물 찬양이 한창이라 한다. ‘레이펑 동지에게서 배운다[向雷鋒同志學習]’던 마오쩌둥의 지시가 부활한 것이다. 레이펑은 누군가? 중국 문화대혁명의 아이콘이었다. 인민군 병사였던 그는 스물두 살이 되던 1962년 랴오닝성 푸순에서 사고로 죽었다. 그의 유품인 일기장에 "녹슬지 않는 혁명의 나사못이 되고 싶다"는 구절과 함께 "마오쩌둥에 대한 충성이 당과 국가에 대한 충성"이라는 다짐이 적혀 있었다. 이 사연을 들은 마오쩌둥이 옳다구나 하고 그를 영웅의 대오에 올려놓고 국민들에게 충성을 요구했다.

 지금 와서 레이펑이 등장한 이유는 여러 가지일 것이다. 미국과의 통상 마찰로 경제가 어려운 이때 그 같은 젊은이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도 있을 테고, 시진핑 주석의 독재적 성향이 높아지면서 비판과 반대의 목소리가 고개를 들자 충성심을 강조하고 싶은 까닭도 있을 터. 문제는 그런 방식으로 위기를 해소하고 반대자를 억누를 수 있느냐다. 위기는 기회라고 한다. 위험한 것은 ‘모른다는 사실을 모른다(Unknown Unknown)’는 리스크다. 위기 상황에서 모른다는 것은 대비하거나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속절없이 그냥 당하는 수밖에 없다. 물론 시진핑 주석은 얼마 전 아베 일본 총리를 베이징에서 맞이해 서로 돕기로 합의하는 등 중·일 협력 분위기를 한껏 띄우면서 현재의 곤경에서 벗어나는 묘수를 띄웠다.

이른바 ‘제1차 중·일 제3국 시장 협력 포럼’이다. 두 나라가 마치 경제 동맹을 맺은 듯이 손잡고 세계 각지의 사업에 동반 진출하자는 얘기다. 양측은 이미 태양광 사업으로서 사상 최대라는 8천억 원 규모의 두바이 발전소 프로젝트에 일본 종합상사 마루베니와 중국의 진코로 이뤄진 컨소시엄 팀이 성공을 거뒀다. 더하여 세계 50여 곳에서 굵직굵직한 사업들을 합작하기로 했다. 시진핑 주석 입장에서 거대한 ‘일대일로’ 사업을 성공시키려면 일본 자본이 필요하고, 아베 입장에서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보호무역 탓에 새로운 시장 개척이 절실했으므로 서로 간의 이해가 맞아 떨어진 결과다.

영토 분쟁과 과거사 문제 등으로 항상 원수지간 같았던 중국과 일본이 아니었던가. 결국 국제사회에서는 영원한 친구도 없고 영원한 적도 없는 법. 중·일 제3국 시장 협력 포럼이 겁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얼마 전 청와대 조국 민정수석은 페이스북에서 문재인 정부 출범 1년 반을 회고하며 "한번에 ‘비약’은 못할지라도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것"이라며 ‘호시우보(虎視牛步)’하겠다고 했다. 소처럼 꾸준하고 성실하게 걸으면서 호랑이처럼 날카롭게 주시한다는 건데 문재인 정부의 국정기조를 대변하는 말이 아니냐는 평가는 그렇다고 치자. ‘보각국사비문’을 쓴 고려의 문인 민지는 일연 스님의 생애에서 스님이 몽골 침략기와 원나라 간섭기를 ‘호시우보’하며 "무리 속에서 홀로 있는 듯하고 존귀함과 비천함을 같이 생각했다"고 적었다.

80여 년에 걸친 스님의 생애가 호랑이 눈초리를 하면서도 걸음걸이는 소처럼 여유로웠다는 얘기다. 지금 한반도 상황은 녹록지 않다. 더하여 국내 경제 상황은 나날이 악화되고 있다. 문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 대한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는 긍정 48%, 부정 45%라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6개월 전 72.5%의 긍정이 반 토막 가까이 날아간 것이다. "고용과 투자 등 경제지표가 몇 달째 저조하게 이어지며 경제 회복에 대한 기대가 약화된 것이 지지율 하락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더 비관적으로 "국정 동력이 상실돼 반등할 골든타임을 이미 놓쳤다고 본다." 따라서 "반전 카드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수준으로 시장에 신뢰를 주고, 청와대 인적 쇄신과 야당과의 협치 노력에 보다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는 부연 설명도 있다.

소는 친숙하고 듬직의 상징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어리석음의 표상이기도 하다. 아무리 가르쳐도 알아 듣지 못 한다는 ‘쇠 귀에 경 읽기’가 대표적 사례다. 우보(牛步) 역시 지나치게 느려 답답하다는 해석도 있다. 와행우보(蝸行牛步). 중국인들은 행동이나 발전이 매우 느리고 답답할 때 이 말을 자주 쓴다. 레이펑을 본받거나 우보에 방점을 두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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