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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혜영 국회의원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말을 타고 달리다가 중간에 멈춰 서서 기다린다고 한다. 누군가 뒤를 따르는 사람이 있어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너무 빨리 달려서 ‘정신’이 미처 따라오지 못할까봐 기다린다는 것이다. 얼핏 들으면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는 말이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꽤나 현실적으로 와 닿는 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 현대인의 삶이란 대부분 ‘성찰’ 없이 ‘내달리는’ 삶이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있어서는 노년기에 접어드는 그때가 비로소 달리던 말을 멈추는 시점이다. 현실적으로 젊어서는 그게 쉽지 않다. 대부분은 나이가 들고, 은퇴를 하고, 하루아침에 너무나 한가해져 버린 자신을 마주하고 나서야 비로소 멈춰 설 수 있다. 노년에 접어들었을 때, 달리던 말을 멈추고 기다릴 수 있게 되었을 때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에게 남아 있는 것은 무엇이겠는가?

 그 시점에서 우리의 눈에 명확히 들어오는 것은 죽음이라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젊어서 바쁘게 공부하고 일하며 살다가 어느 날 문득 준비 없는 상태에서 노년을 만난다. 살아온 인생을 추억하고, 성찰하고, 죽음을 준비해야 할 그 시기에 불행하게도 아무런 준비가 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아무 준비 없이 노년에 던져진 삶은 허무하고 쓸쓸하다. 남은 것은 후회와 아쉬움일 뿐이고 피할 수 없는 죽음은 두렵고 허망할 뿐이다. 더구나 이렇게 준비 없이 노년에 던져지는 사람이 전체 인구의 절대다수라면? 이것은 단순히 한 개인의 실존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운동의 차원에서 또 국가 정책의 차원에서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과제라는 의미이다. 한국과 같은 초고령화 사회에서 웰다잉문화 확산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간은 마지막까지 존엄한 존재여야 한다. 죽음의 순간에 이르기까지 온전히 자기 삶의 주인으로서 결정권을 지녀야 한다. 내가 웰다잉문화 조성을 위한 국회의원 모임을 만들어 약칭 ‘연명의료 결정법’ 통과에 앞장섰던 이유는 일단은 죽음에 이르는 그 순간에 인간으로서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한국인 10명 중 6명이 자신이 살던 곳에서 임종을 맞기를 원하지만 전체 사망자의 70% 이상, 암 사망자의 경우에는 90% 이상이 병원이나 요양시설에서 임종을 맞는 것이 현실이다. 다행히 법이 통과돼 멀쩡한 정신에 ‘사전 의료의향서’를 작성해 둠으로써 불필요한 연명 치료를 피할 수 있게 됐다. 얼마 전에는 개정안도 통과돼 사전 의료의향서를 미처 작성하지 못하고 의식불명이 됐을 때 직계가족의 결정만으로 연명치료를 면할 수 있는 길도 열렸다.

 그러나 사전 의료의향서 제도 시행은 시작일 뿐이다. 정작 우리 사회가 초고령화 사회의 대안을 갖고자 한다면 죽음을 의미 있게 준비하는 다양한 노력들이 이뤄져야 한다. 호스피스 제도의 확산과 장기기증, 장례, 장묘에 대한 결정과 같이 ‘육체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한 결정해 유언장 작성이나 유산 기부와 같이 ‘정신적·물질적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한 결정, 일기나 사진 등 삶의 기록을 남기고 남아 있는 사람들과 공유하는 ‘관계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한 실천 등이 포함된다.

 이러한 일들을 본격적으로 해나가기 위해 뜻을 함께 하는 분들과 ‘사단법인 웰다잉 시민운동’을 발족하기로 했다. 웰다잉이 시민사회의 주요 어젠다로 정착되도록 하기 위함이다. ‘사단법인 웰다잉 시민운동’은 12월 28일 창립총회를 갖는다. 이 일에 깊게 관심 가져온 나로서는 비로소 한 고비를 넘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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