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내로라하는 수재들만 다닌다는 학교를 졸업하고,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무시무시한 직업을 가졌던 젊은 인물이 용인을 텃밭으로 정치를 하겠다며 내려왔다.

 그에 대해 아는 바는 없었지만 간판 하나만으로 남자나 여자나, 어른이나 아이나 할 것 없이 마치 구세주라도 만난 듯 쌍수를 들어 환영했고 추앙했다. 그는 텃밭을 일구기 위해 호미 한번 잡은 적이 없었지만 맹목적인 추종자들 덕분에 뜻하는 바를 이뤘다.

 장례식장에서 조문이라도 할라치면 그의 뒤엔 머리가 희끗희끗한 지역 원로들이 병풍처럼 버티고 있었다. 그는 용인을 떠났다.

 또 다른 어느 날 푸른 기와집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인물이 낙하산을 펼치고선 여기저기 뛰어내릴 곳을 살피다 용인이 호락호락하게 보였는지 착륙지점으로 정했다.

 이곳은 사정이 사뭇 달라서 묻지마 추종세력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지역에서 잔뼈가 굵은 맷집 좋은 청년이 ‘나를 밟고 가라’며 버티고 있었다.

 자신의 스펙에 주눅이 들만도 한데 이 청년은 도무지 머리를 조아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완력 대 완력으로 힘겨루기에 나섰지만 무릎을 꿇은 쪽은 그쪽이었다. 지금 그 청년은 어느 새 중견정치인으로 성장해 지역과 국가발전에 한몫하고 있다.

 최근 용인시 유관기관 대표이사 선발 과정을 지켜보면서 지난 일들이 오버랩돼 씁쓸함을 감출 수가 없다. 이른바 ‘전문가 프레임’ 때문이다. 해당 분야 경력자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전문가라며 칭송한다. 일부 공직자들과 시의원들도 같은 논리로 프레임 싸움을 한다. 틀린 얘기는 아니지만 동의할 순 없다. A가 B에 비해 비전문가라는 주장도 수용하기 힘들다.

 응시 자격을 갖췄다면 누구든 대표이사가 될 수 있는데도 ‘전문가 프레임’을 들이대며 나머지는 무자격자 취급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어느 집 자식인지도 모르는 인물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송하면서 아버지가 누군지 아는 인물은 모질게도 씹어대는 비뚤어진 풍토는 사라져야 한다. 지역에서 산전, 수전, 공중전, 백병전까지 치르며 전투력을 키워온 인물을 백안시하는 한 지역발전은 요원하다.

 ‘나를 밟고 가라’던 청년의 호기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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