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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영준 나사렛국제병원 진단검사의학과 소장
서양인들과 달리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본인의 혈액형을 알고 있다. 또한 혈액형과 연관된 ‘미신’도 많이 믿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사람의 성격이 혈액형에 따라 결정된다’는 주장이다. 서양인들은 혈액형에 대해 관심이 없고, 심지어 혈액형을 알고 있다면 매우 신기하게 생각한다.

 혈액형 검사는 수혈과 임신, 장기이식 등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혈액형 관련 내용에 대한 관심은 젊은 층에서 많은데 오히려 수혈하거나 수술은 젊은 층과 상대적으로 거리가 멀다. 병원에서 수혈이 필요하면 정밀한 검사를 충분히 시행하기 때문에 굳이 미리 알 필요는 없다.

# 과연 혈액형과 성격에 관련된 이야기는 어디에서 왔을까?

 혈액형 검사의 역사는 100여 년 정도 됐다. 이야기는 독일에서 시작된다. 에밀 폰 둔게른이 혈액형 연구를 하다가 북서유럽 지역 출신의 백인일수록 A형이 많고, 동유럽 지역 출신이나 아시아·아프리카의 유색인종일수록 B형의 비율이 높은 것을 찾아냈다. 이를 우생학자들이 악용해서 A형이 많을수록 진화된 인종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이 주장을 근거로 생화학적 인종지수를 계산하면 한국인은 1.18(아시아-아프리카형), 일본인은 1.48(중간형), 영국인(4.09)이나 프랑스인(5)은 ‘유럽형’이다. 일본인들은 이를 근거로 조선인은 일본인보다 B형의 비율이 높아 열등하다고 이용하고, 나치 독일은 이런 잘못된 순혈주의, 우월성 이론으로 유대인을 집단 학살하기도 했다.

 일본 제국은 타이완 점령시기에 타이완인들로 인해 일본인들이 살해되자 순종적인 홋카이도 아이누족보다 O형 혈액형의 빈도가 높은 것을 빗대어서 O형 성격이 공격·반항적이므로 O형 비율을 낮추려는 정책을 펴기도 했다.

 그러나 전쟁 이후에 주목받지 못하다가 1970년대 방송작가 노미 마사히코가 「혈액형으로 알 수 있는 상성」이라는 혈액형 성격설에 관한 책을 펴내면서 대유행하게 된다. 노미의 아들도 역시 관련 책들을 내놓아서 일본에 혈액형 성격설을 퍼뜨리게 된다. 이들 책이 우리나라로 번역돼 넘어오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유행하게 됐다. 지금도 일본에는 혈액형별로 보는 오늘의 운세 자판기가 곳곳에 있을 정도이다. 그 후에 여러 나라 과학자들이 혈액형과 성격은 무관하다고 발표했으나 상당수의 사람들은 아직도 믿고 있다.

# 혈액형에 얽힌 이야기

이로 인해 불행한 경우도 생긴다. A형은 규율을 잘 지킨다고 알려져 있어서 ‘A형 사람은 좋은 성격을 갖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본인은 A형이 아닌데 A형이라고 거짓말할 수 있다. 이성 간에 데이트할 때 A형 여자가 남자에게 혈액형이 무엇이냐고 물었고, 남자는 사실 B형인데 A형이라고 말한 커플이 있었다. 결국 결혼하고 자녀를 낳아 잘 살고 있었는데, 아이가 중·고등학교 과학 실험에서 혈액형 검사를 해 보고 B형이 나와서 집에 가서 엄마에게 부모 혈액형을 물어봤다. 엄마의 대답은 당연히 부모 모두 A형이라고 이야기했고, 며칠이 지난 뒤 아이는 ‘그동안 저를 잘 보살펴 주어서 감사합니다’라는 편지를 쓰고 사라져 버렸다는 얘기도 있다.

 이처럼 잘못된 사회적 미신으로 불행한 사건이 생길 수 있다. 이 외에도 여러 가지 사건들이 있었다.

 대다수가 가지고 있는 혈액형이 있고 AB형처럼 소수가 가진 혈액형이 있는데, 사회적인 관점으로 보면 대다수가 소수를 ‘왕따’시키려는 현상으로 소수의 성격을 나쁘다고 몰아가는 데서 이런 미신이 생길 수 있다. 일본어 줄임말로 ‘부라하라’는 ‘blood harassment’를 뜻한다. 특정 혈액형을 따돌리거나 차별하는 사회적 현상이다. 사실 사람마다 각기 다른 ‘성격’을 단지 몇 가지로 구분지어서 설명하기도 힘든데 말이다.

 전문가의 입장에서 보면 혈액형은 단순하지 않은 경우를 종종 본다. AB형과 O형 부모가 자녀를 가졌을 때 AB, O형이 나오는 경우(cis-AB)도 있고, Rh양성끼리 자녀를 가졌는데 Rh음성 자녀가 나올 수도 있다. 이 외에도 ABO혈액형의 아형(subgroup)이 여러 개 있고, ABORh 혈액형 외에 다른 혈액형들로 존재하고 있고, 이로 인해서 수혈 전 검사에서 문제가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깊게 들어가면 수십·수백 가지의 다양성이 존재하는 혈액형에 빗대어 단순하게 4가지 성격을 구분해서 생각하는 것 자체가 비과학적이다. 결론적으로 성격과 혈액형은 연관성이 없으므로 잘못된 믿음으로 불행해지는 사람이 없도록 노력해야 한다.

 <도움말=나사렛국제병원 진단검사의학과 정영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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