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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효성 소설가
시대의 지성으로 보통사람들에게 지적 유희를 즐기게 해 줬던 이어령 님의 글 ‘증언하는 캘린더’ 중에 나오는 문장이다.

 "마지막 달력 장 앞에 선다. 회환과도 같은 바람이 분다. 한 해의 시간들이 얼어붙는다. 12월. 12월은 빙화(氷花)처럼 결정(結晶)한다. 차가우면서도 아름다운 결정의 달! 1월의 기대와 2, 3월의 준비와 4월의 발열과 5, 6월의 소란과 소나기와 같던 7월의 폭력과 그리고 8월과 9월의 허탈, 불안한 10월과 여백 같은 정체의 11월, 한 해의 모든 것들이 마지막 결정하는 12월 속에 우리는 서 있다."

 저무는 한 해가 아쉽다. 시작의 첫 칸에서 야무지게 쥐었던 목표가 시간이 흐르면서 느슨해져 갔다. 길다고 생각했던 일 년을 헐겁게 보내버린 자화상은 잰 발걸음이 돼 12월을 보낸다. 소망했던 것들 중에서 목표달성의 확률을 얼마나 완성했을까, 결과는 신통치 못해서 딱 한 장 남은 달력을 보며 이제라도 마무리를 잘하면 한두 개 정도는 목표치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로 분주해진다. 기대는 기대일 뿐 예외 없음을 경험했지만 가능성에 거는 믿음은 희망이 된다. 그래서 ‘가능성은 신이 주신 힌트다’고 한 쉐렌 키에르케고르의 명언이 힘을 얻는 12월이다.

 확률은 우리 삶의 정곡으로 자리 잡아 여러 곳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십중팔구니 만에 하나니 백발백중이니, 하는 말들이 자연스러운 것은 오랜 세월동안 일상에서 확률을 논제로 삼아왔던 결과다.

 정자와 난자가 만나 생명으로 탄생되는 확률이 0.000000000125%라고 한다. 내가, 혹은 당신이 태어난 확률이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보다 어려운 대단한 행운을 타고난 셈이다. 풀밭에서 네 잎 클로버를 한눈에 찾을 확률이 0.0001%라는 재미있는 확률부터 125분의 1초 확률이 만들어내는 사진작가의 작품처럼 우리의 운명에 작용하는 확률은 극히 미미한 것 같아도 엄청난 운명적 힘으로 우리 생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확률을 얘기할 때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보험이다. 큰 수의 법칙에 의거해 보험계리사들이 책정해 만든 보험료와 보험금은 가입자도 보험회사도 합리적이다 싶은 접점에서 결정이 되는데 과거의 사고나 미래의 손해를 예측한 확률을 토대로 한다. 스페인의 이사벨라 여왕은 확률 희박한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에 비용을 제공하고 세계 역사상 가장 큰 패를 잡은 인물이 됐다.

 80대 20 파레토의 법칙도 확률에서 나왔다. 원래는 소득분포에 대한 통계자료였지만 오늘날에는 자연에도 사람들 사이에도 적용되는 법칙이다. 상위 20% 사람이 부의 80%를 차지한다는 파레토의 법칙은 발표 당시인 1890년대뿐만 아니라 어느 시대를 대입해도 맞아떨어진다. 교통법규 위반 운전자의 20%가 또다시 교통법규 위반의 80%를 차지하고 기업에서 생산한 여러 제품군 중 20%의 상품이 매출의 80%를 차지하고 부지런의 아이콘인 일개미도 관찰해 보면 80%는 놀고 20%만 일을 한다고 한다. 다시 일하는 개미 20%를 따로 떼어내 놓았더니 이 중 80%는 빈둥거리고 20%만 일을 한다는 파레토의 법칙이 재미있어진다. 질병이 발생한 확률을 미리 예측하는 게놈 의학도 유전자 정보를 이용해 질병 발생 확률을 수치화 한 것이다. 앤젤리나 졸리가 유방 절제 수술을 받은 것도 87% 암 발생 가능성이 있다는 유전체 지도를 보고 내린 결정이었다.

 심각하고 위험한 확률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생의 어느 순간에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확률도 만난다. 얼음꽃 장관인 상고대를 겨울 산에서 만날 확률이 16.4%, 장엄한 일출을 겨울 산에서 볼 확률 21.9%는 매서운 추위 속에서 맛보는 즐거움이다.

 올해가 가기 전에 미진한 무엇을 이룰 확률은 높지 않다. 그래도 설렘의 잔을 들고 한껏 희망을 그렸던 한 해가 무탈하게 지나고 있으니 안녕을 빌었던 소망의 확률은 맞아떨어진 것이라고 위안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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