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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 소장
#1. 타이완 남부의 고도 타이난에는 일제식민기인 1942∼45년에 시장을 역임한 일본인 하토리 마사오의 업적을 기린 동상이 버젓이 서 있다. 정확히 말하면 흉상인데 2002년에 세워졌다. 하토리 마사오 시장의 업적은 별로 대단치 않아 보인다. 그는 황국신민화 운동이 한창인 당시 타이완에서 가장 오래된 종(鐘)을 무기 제작용 고철로 징발되는 걸 막는 등 문화재 보호에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태평양전쟁 중임에도 예산을 편성해 적감루(크칸러우) 복원 사업을 진행했다. 적감루는 17세기 네덜란드 점령기 때 섬 전체의 지휘부가 있었던 곳. 원래는 서양식 벽돌 건물이었다고 한다. 현재는 타이완 전통 양식의 2층 누각, 유교·도교식 사당 등이 복잡하게 세워져 있는 관광지다. 그 당시 타이완의 총독부나 일본군은 적감루 복원 사업에 적극 반대하지는 않고 시큰둥했기에 종전 전에 복원 작업이 끝났고 하토리는 종전 후 일본으로 돌아갔는데 타이완인 사업가가 그의 공로를 기억하자며 뒤늦게 흉상을 세운 것. 반일 구호를 딛고서.

 #2. 밤바다로 유명한 전남 해안의 항구도시 여수에서 지난달 발생한 모텔의 화재가 관심을 끌었다. 여수 관광의 심벌이라고 할 수 있는 해상 케이블카 탑승장에서 약 1.5㎞ 떨어진 돌산읍 우두지구의 무인텔에서 불이 난 것이다. 불이 난 이곳 객실에 숙박했던 30대 남녀 2명이 목숨을 잃었고, 다른 5명은 연기를 들이마셔 병원 치료를 받았다. 이날 무인텔에 숙박한 사람은 모두 55명, 따라서 인명 피해는 다행히 그리 크지 않았다. 종업원이 신속하게 신고했고 소방대가 약 400m 거리에 있어 출동하는 데 2분이 채 안 걸린 덕분이었다.

 관광객 급증으로 여수지역은 몸살을 앓고 있다. 건축 허가 횟수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안전사고뿐만 아니라 수질 오염과 땅값 상승 등을 걱정한다. 이미 돌산도 진모·상포지구의 펜션 인근 하천에서 오폐수가 바다로 흘러 들어 종패가 자라지 못할 정도가 됐다고 한다. 관계자들은 환경 보전과 주민 안전에 대해 시급함을 주장하고 있다. 망가져가는 밤바다에 대한 주민들의 안타까운 호소가 나날이 커지고 있다.

 #3. 서울시가 진행하고 있는 찾동(찾아가는 동주민센터) 사업이 진화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주차 공간, 쓰레기 문제, 가로등 설치 등등 골목길에서 흔히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해 주민들은 누구든 온라인으로 골목회의 개최를 요청할 수 있고, 이 안건은 이어 열리는 주민자치회에 의제로 올라가 논의된다. 최종적으로 구청장이 정식 의제로 택하면 예산이 할당돼 처리된다. 서울시는 애초 찾동의 취지인 ‘지역사회 보장체계 강화’에 공을 들여 돌봄 서비스까지 확대할 계획이라고 한다. 지역사회 주민들과 함께하는 사업이 골목 자치의 모범 사례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도시학자 제이콥스는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에서 자신들이 실제로 살지 않는 공간에 대한 계획과 개발은 ‘도시 재생이 아니라 도시 약탈’이라고 간단 명료하게 지적하고 있다. 그가 소개한 한 이야기가 분명한 메시지를 전해준다. 뉴욕 이스트할렘의 새로 정비된 저소득층 주택단지에 자리를 크게 차지한 잔디밭이 있다. 지역 관계자들은 "이제 가난한 이들도 널찍한 잔디밭에서 휴식을 즐길 수 있다"고 한마디씩 했다. 하지만 그곳에 사는 주민들은 그 잔디밭을 좋아하지 않는다. "누가 저것이 필요하답니까?"

 제이콥스가 거듭 말한다. 행정 당국과 개발 관계자들이 지역 주민의 삶에 대해서 실제로 아는 바가 없기 때문에 ‘개발’이니 ‘주거환경 개선’이니 하는 명분으로 엄청난 폭력을 휘둘렸다고. 결국 수백 억, 수천 억 원을 들여 수립한 도시 계획이 오히려 주민들을 힘들게 하고 도시의 활력을 떨어뜨린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지금 도처에서 도시 재생이니 재개발이니 하는 화려한 청사진이 제시되고 있다. 인천에서도. 도시의 재생 사업이나 도시 재개발은 전문가니 무슨 연구소의 박사니 하는 이들이 아니라 그곳에 살고 있는 주민들에 의해 만들어져야 제대로 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증명된 바다. 살고 있지 않은 사람들이 섣불리 나설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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