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만명 감축설은 우선 그 규모에서 눈이 휘둥그러지게 된다. 선군정치(先軍政治)라는 독특한 통치방식을 도입한 북측에서 그렇듯 대규모로 병력을 감축할 수 있을 것인지 의구심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군축문제와는 별로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에너지 관련 회의를 계기로 남북 인사들 간 사적인 대화에서 흘러 나왔다는 것도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반면 과거 북측이 제기해 왔던 군축 제의의 맥락에서 본다면 일맥상통하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지난 90년 고위급 회담 때 북측 연형묵 전 총리는 단계적인 병력 감축을 통해 최종적으로 10만명 선으로 각각 줄이자는 안을 내놓았다. 앞서 88년에는 당ㆍ정ㆍ의회 연석회의에서 주한미군 철수와 군축을 3단계에 걸쳐 시행하는 포괄적 평화방안을 내놓았다. 개략적으로 볼 때 단계적이라는 전제 아래 100만명 감축도 가능하다는 것이니 그 절반 정도의 감축을 놓고 놀랄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2만 내지 5만명을 감축할 계획이라는 외신보도는 오히려 규모가 너무 작아 의아스럽게 여겨지기도 했다.
북측 제의를 `위장된 평화공세'로만 여겨서는 군축의 염원은 한갓 꿈으로 남을수밖에 없다. 전례를 보더라도 일방적인 군축사례는 찾아보기 힘들 뿐만 아니라 현재 한반도의 군사적 대치상황 때문에 한 쪽만의 양보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주한미군 철수, 미국과 평화협정 체결 등 북측이 내세우고 있는 선결조건을 근거로 `위장' 딱지를 붙이기만 해서는 한 치도 진전을 기대할 수 없다. 북측이 주택 도로건설 같은 경제건설 현장에 군인을 투입하고 있는 사실 등으로 미뤄 볼 때 총을 망치로 바꿔 들게 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닐 수도 있다. 신의주 특구지정, 일본인 납치 인정 및 사과처럼 군축 분야에서도 깜짤 놀랄 조치를 내놓을수있다는 것이다. 최근의 북측 변화 바람을 이용해 남측이 더 적극적으로 `군축 공세'를 펴 나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북측 군축방안은 그런 대로 알려져 있지만 남측의 그것은 무엇인지 딱히 지피는 바가 없다는 지적을 관계당국에서는 귀담아 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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