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사람의 영혼이 다른 사람의 몸에 들어가는'빙의(憑依)'를 소재로 하는 영화 「중독」은 이병헌과 이미연이라는 두 배우의 이름값만으로도 영화팬들의 기대를 모으는데 어렵지 않게 성공한 영화다.

결과적으로 두 배우의 절정의 연기와 신인 박영훈 감독의 연출력은 칭찬이 아깝지 않을 만 하다. 하지만, 아쉬운 것은 복선 없이 갑자기 등장하는 반전. 느닷없이 뒤집히는 줄거리는 두 인물의 감정에 한참 빠져있던 관객들을 멜로영화의 감상(感傷)을 쫓아야 할지, 아니면 미스터리 물의 호기심으로 점프해야 할지 불편한 혼란 속으로 빠뜨리며 이 영화의 결정적인 오점으로 남는다.

콘서트 기획자 은수(이미연)는 남편인 가구공예가 호진(이얼)과 시동생인 카레이서 대진(이병헌)과 함께 교외에 마련한 보금자리에서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나 현실에서나 행복은 그다지 오래가지 않는 법. 은수가 "너무 행복하다"며 호진에게 속삭이던 어느날, 호진과 대진은 같은 시각 불의의 교통사고로 의식을 잃고 혼수상태에 빠진다.

은수가 둘을 돌보며 힘든 하루하루를 보낸 지 1년. 대진은 기적적으로 깨어나 다시 생명을 얻지만 자신이 대진이 아닌 형 호진이라고 주장한다. 남편이 시동생의 몸을 갖고 깨어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은수와 빙의 사실에 혼란스러워하면서도 은수에게 자신의 존재를 확인시키려 하는 대진. 대진의 몸과 호진의 영혼,그리고 은수가 동거하는 집은 사랑과 행복이 넘쳐나는 공간에서 혼란의 공간으로 변한다.

결국 괴로워하는 은수를 떠나기로 하는 대진. 대진은 자신을 짝사랑하던 예주(박선영)의 목장에서 생활하며 새로운 삶을 살아가려고 애쓴다. 하지만 비가 내리던 어느날 대진은 은수에 대한 그리움을 참지 못하고 그녀의 곁으로 돌아간다.

대진은 은수에게 둘만의 비밀을 말하며 자신이 호진임을 이해시키려 하고 은수도 호진의 말이 사실임을 느끼며 점점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한다. 다시 맺어진 두사람. 이들은 자신들의 슬픈 운명만큼이나 격정적인 사랑을 나누는데…

'한 영혼을 사로잡은 지독한 사랑'을 광고 카피로 내세운 영화 「중독」에서 두남녀 주인공의 연기에 실망할 관객들은 찾아보기 힘들 것 같다.

이병헌은 형 호진역을 맡은 이얼의 몸짓 하나하나를 재현해 내며 잔뜩 물이 오른 연기를 보여준다. 빙의된 스스로의 모습에 혼란스러워 하며 자신을 시동생으로만 대하는 은수를 애처롭게 바라보는 대진이라는 캐릭터는 이병헌을 만나면서 빛을 발하는 것 같다.

이미연도 무게감있는 연기력을 갖춘 여배우를 그리워했던 영화팬들의 기대에 보답하고 있다. 초반 남편 호진의 사랑에 행복해 하는 발랄함과 중반 호진의 빈자리를 허전해 하는 슬픈 눈빛, 그리고 다시 찾아온 사랑을 받아들이는 깊이까지 연기생활 15년째를 맞는 이미연은 이 영화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매력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충무로 경력 12년이라는 박영훈 감독의 신인감독답지 않은 연출도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멜로 영화를 흡인력 있게 이끌고 있으며 경기도 마석에 지은 전원주택 세트나 그룹 베이시스 출신 정재형이 들려주는 영화음악도 영화를 예쁘게 하는데 단단히 한몫을 한다.

하지만, 영화 전체의 컨셉을 뒤집을 만한 후반부의 반전은 이 영화의 많은 장점을 덮어버릴 정도로 갑작스럽다. 충격적이다 못해 받아들이기 힘들 정도. 흥행을 염두에 둔 억지스러운 반전이라는 의심마저 들게 한다.

오리온 그룹 계열 쇼박스의 첫번째 배급작으로 「미술관 옆 동물원」과 「여고괴담」과 「서프라이즈」를 만들었던 씨네2000이 제작했다.

25일 개봉. 상영시간 110분. 15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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