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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훈 겨레문화연구소 이사장
우리나라는 건국 이래 천 여 번이 넘는 외적의 침략을 받았다고 한다. 어느 정도의 전쟁이냐에 따라 숫자의 차이는 많겠지만 역사 기록에 비춰 보더라도 매우 빈번하게 일어났던 것만은 사실일 것이다. 그래서 당연히 군사적인 방어시설을 의미하는 성곽(城郭)을 많이 쌓게 되었는데 지역이 험한 곳에는 산성(山城)을, 평지에는 읍성(邑城)을 쌓았다. 성(城)은 내성(內城)을 말하고, 곽(郭)은 외성(外城)을 가리키는데 우리나라는 특별히 구별하지는 않았고 조선시대에는 곽은 쌓지 않고 주로 성만을 쌓았다고 한다.

 현재 전국적으로 확인된 성터는 놀랍게도 대략 1천200여 곳인데 완전한 조사가 이뤄지면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 문화 유적 중에 가장 그 숫자가 많은 셈이다. 그래서 세종 때 「팔도지리지」를 편찬했던 양성지(梁誠之)란 사람은 우리나라를 ‘성곽의 나라’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상들의 피와 땀, 그리고 얼이 깃들어 있는 성곽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다. 심지어는 성곽에 관한 연구사례조차 별로 없고, 관련 논문도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아마도 가장 큰 이유는 개인의 능력으로 전국 방방곡곡에 흩어져있는 성곽을 직접 조사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소설과 영화로도 잘 알려진 남한산성(南漢山城)은 누구나 한두 번쯤 가본 곳이다. 병자호란 당시 인조임금이 이곳에서 사십여 일간 항전하다가 결국 성문을 열고 나가 적에게 치욕의 항복을 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남한산성의 역사가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을 아는 사람을 별로 없다. 한때 백제의 수도 하남위례성으로 추정되기도 했던 남한산성은 백제의 시조 온조왕이 세운 성으로 알려졌으나, 신라시대에 쌓은 주장성이라는 설도 있다. 조선 시대에 인조와 숙종 때에 각종 시설물을 세우고 성을 증축해 오늘날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는데 일제강점기 직전에는 일본군에 의해 다수의 건물이 훼손되기도 했다. 2014년에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고 수도권에 있어서 많은 시민들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수원 화성(水原 華城)도 우리가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곳이다. 수원 화성은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와 장안구에 걸쳐 있는 길이 5.52㎞의 성곽인데 조선 후기 정조가 그의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묘를 수원에 옮기면서 축조한 성이다. 특히 화성은 군사적 방어 기능과 상업적 기능을 함께 보유한 실용적인 구조로 되어 있어 동양 성곽의 백미(白眉)로 평가받는 곳이기도 할 뿐만 아니라, 한국 성(城)의 구성 요소를 모두 갖춰 한국 성곽 건축 기술을 집대성했다고 평가되는 중요한 곳이다. 남한산성보다 이른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곳이기도 하다.

 높이 213m의 문학산 정상을 둘러 쌓았다는 백제시대의 석축산성 문학산성은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1호로 지정돼 있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이 성을 남산석성(南山石城)이라 했고, 「동사강목(東史綱目)」에서는 비류(沸流)의 옛 성이며, 「인천읍지」에서는 미추홀(彌鄒忽) 고성이라 불렀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는 옛 성을 수축해 지키면서 여러 차례 왜적을 무찌른 곳이었다. 성벽의 길이가 577m였고 현재 남아있는 부분은 339m라지만 실제로 성벽으로 보이는 곳은 일부를 제외하곤 확인하기가 쉽지는 않다. 남한산성이나 수원 화성처럼 규모가 크지 않아서 그런지 제대로 관리가 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나는 3년 전부터 관심이 많은 몇몇 인사들과 뜻을 모아 매월 한 차례씩 성곽을 찾고 있다. 지난달에는 임진왜란때 의병의 거점이었다는 전남 담양의 금성산성을 돌아보았고, 이달에는 백제시대 각종 유물이 출토됐다는 서울 송파 근처의 몽촌토성을 살펴볼 계획이다.

 지금까지 1천 200여 곳이 넘는 성곽의 약 3% 정도에 불과한 35차에 걸쳐 답사했으나 그 의미는 매우 크다. 성곽이나 성터의 복원이 잘 돼 있고, 안내 표시도 잘 된 곳이 있었지만, 안내 표시조차 없이 무너진 성터를 그냥 방치해 둬 머지않아 흔적조차 사라질지도 모르는 곳도 많았다. 기존의 성벽을 새 돌로 교체하고 본디 돌은 아무렇게나 방치하고 있는 어처구니없는 곳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대학과 연계해 전문적인 고증을 바탕으로 체계적인 발굴 작업을 통해 완벽하게 복원하고자 노력하는 놀라운 지자체도 있었다. 이제 모든 지자체들은 지역의 정체성과 전혀 어울리지도 않는 축제나 행사에 귀한 세금을 낭비하지 말고 관할 지역의 성곽 복원에 적극 나서주기 바란다.

 성곽은 우리 고장을 지켜 내고자 노심초사(勞心焦思)한 조상의 끈질긴 삶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역사 교육의 현장이자 지역의 훌륭한 관광 자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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