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네임처럼 ‘애매모호’하다. 그들의 무대를 보기 전까진. 그들과 이야기를 하고 의견을 나눈 뒤 명확해졌다. ‘경계(境界) 없는 경계’가 그들의 춤이다.
안산문화예술의전당 상주단체인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를 이끌어 가는 두 축, 장경민 대표와 김보람 예술감독을 만나 소위 ‘현대무용’을 하고 있는 그들의 세계를 들여다봤다.

▲ 2018년 신작 ‘틈’. 파이프오르간의 풍성하고 웅장한 소리와 앰비규어스의 몸짓이 관객을 사로잡는다.
# 처절한 현실, 인고의 시간 버텨

 애매모호한(ambiguous·앰비규어스)이란 의미의 형용사를 브랜드 네임으로 사용하고 있는 이들의 시발은 스트리트댄스였다. 장 대표는 어릴 적 방송댄스로 시작해 대학에 진학하며 현대무용을 익혔다. 대학 동기인 김 감독은 워낙 안무가로서 정평이 나 있다. 김 감독 역시 장르를 구분하지 않고 ‘몸짓’을 하는 스타일이다. 무용계에서 알 만한 사람은 이들의 실력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2007년 창단된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는 초창기 마땅한 연습실조차 없었다. 이른 아침, 인적 드문 한강에 모여 연습하기도 했고, 학교나 공사장에 숨어들며 꿈을 키웠다. 단원들은 레슨을 하기도 했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해 전공과는 무관한 카페에서 서빙 아르바이트 같은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연습 과정이 고되더라도 공연이 성공하면 기꺼이 감당하겠지만 ‘현대무용’이란 타이틀은 애초 관객몰이가 어려웠다.

 좋은 작품을 만들고 호평도 많이 받았지만 생계가 어려우니 다른 생각을 하지 않는 게 되레 이상할 정도. 김 감독은 아예 춤을 접으려고 마음먹기도 했다.

 "춤으로 먹고살기 불안했죠. 춤은, 예술은 배고파야 한다는 인식(?)이랄까. 이런 걸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때 춤을 내려놓으려고 작심한 적이 있었죠."(김)

▲ 콘서트 형식의 작품 ‘바디 콘서트’. 동유럽 대표 축제인 시비우국제연극제에 초청돼 루마니아 관객에게서 기립박수 받기도 했다.
# 지역 무용 발전과 자생력 ‘업’

 도(道)는 카오스(chaos)에서 비롯된다고 했던가. 혼란하고 복잡한 심정으로 결정을 내릴 시점, 공연장 상주단체 제안이 들어왔다.

 2014년 안산거리극축제에 참여한 것이 인연의 단초가 됐다. 다른 단체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반향을 일으켰다. ‘현대무용’이란 장르적 선입관을 넘어 거리극 ‘축제’라는 마당에 이르니 신명이 절로 났다. 이후 2015년, 안산문예전당에서 사무실은 물론 연습실을 제공하겠다는 제안이 왔다.

 "솔직히 당시에는 상주단체라는 기대보다는 지역 문화, 지역 무용 발전에 기여할 수 있겠다는 희망이 더 컸습니다. 서울에서만 안주할 것이 아니라 서울에서 부딪힌 한계를 지역에서 풀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와서 보니 생각보다 환경도 좋고, 우리 단체가 급발전한 느낌을 받았습니다."(장·김)

▲ 콘서트 형식의 작품 ‘바디 콘서트’. 동유럽 대표 축제인 시비우국제연극제에 초청돼 루마니아 관객에게서 기립박수 받기도 했다.
 이들은 안산에 둥지를 튼 후 관객 계발 프로그램을 꾸준히 운영하고 있다. 주부, 직장인, 아이 등 성별과 나이를 가리지 않고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통상 상·하반기 4주 동안 8회 진행한다.

 올해는 장기 프로젝트로 시민무용단을 결성했다. 그들 스스로의 이름처럼 시민무용단 이름도 ‘번갯불 무용단’이란 특색 있는 단어를 차용했다. 포장하지 않고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무용을 가르치고 선보인다는 의미다. 그러나 허투루 하지 않는다. 두 무용가의 노련함과 시민들의 열정이 시너지 효과를 냈다는 평가다.

# 음지는 그만…해외 러브콜도

 관객 계발 프로그램뿐 아니라 안산역사에서의 공연 등 지역과 함께 하는 공연을 끊임없이 선보이고 있는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는 사실, 이미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 앰비규어스 ‘언더더쇼’. 댄스컴퍼니 1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공연으로 다양한 작품들을 보다 새롭게 만날 수 있다.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의 대표 레퍼토리 중 하나인 ▶‘바디 콘서트’는 무용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움직임, 인간의 몸과 춤의 한계를 뛰어넘는 전율을 느낄 수 있기를 바라며 만든 콘서트 형식의 작품이다. 최근 동유럽을 대표하는 국제 공연예술축제인 ‘시비우국제연극제’에 초청돼 루마니아 관객에게서 전석 기립박수를 받은 바 있다. ▶‘언더더쇼’는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의 1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공연으로, 그간 탄생시킨 많은 작품들 가운데 다시 한 번 새롭게 관객들에게 보여 주고 싶은 주제들을 모아 성숙된 버전으로 구성했다. ▶‘틈’은 2018년 신작이다. 파이프오르간 음악 특유의 풍성하고 웅장한 소리가 앰비규어스만의 움직임으로 표현된다.

 이 밖에도 인간이 태어나서 사회구성원이 되는 과정을 표현한 ‘인간의 리듬’, 음악 없이 몸으로만 표현한 ‘언어학’ 등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의 레퍼토리는 다채로우며 각종 대회에서의 수상경력도 셀 수 없을 정도다. 또 해외공연 프로듀서가 따로 있을 만큼 해외에서의 인기도 높다.

대학 동기인 김보람 예술감독(왼쪽)과 장경민 대표.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질문에 장 대표와 김 감독은 컴퍼니 이름처럼 엉뚱하면서도 진지한 답을 내놨다.

 장 대표는 "직접 안무도 해 보고, 대표로서 무용수 관리나 역량 강화를 꾀하겠다. 그리고 결혼도 해야 한다"고 말했으며, 김 감독은 "작품의 질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리고 싶다. 그리고 2세를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박노훈 기자 nhp@kihoilbo.co.kr

사진=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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