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아닌 여성이 결정해야 합니다
시몬 베유 / 갈라파고스 / 1만2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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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해방의 역사에 확실한 이정표를 세운 시몬 베유의 책이다. 그는 임신 중단 합법화를 이끌고 여성의 삶을 변화시켰다.

 2018년 7월 1일 한 위인이 프랑스 국립묘지인 팡테옹에 안장된다. 홀로코스트 생존자이자 여성 인권 신장의 상징인 시몬 베유였다. 1970년대 프랑스에서 임신 중단 합법화를 이끌어 내며 여성의 권리 신장에 앞장선 정치인이었던 시몬 베유가 사망한 지 1년 만의 일이다. 팡테옹은 파리 중심에 위치한 프랑스의 국립묘지로 빅토르 위고, 에밀 졸라 등 70여 명의 지성인과 위인이 묻혀 있다. 이곳에 묻힌 여성은 마리 퀴리를 포함해 네 명뿐이었다. 그 뒤를 이어 다섯 번째로 안장된 시몬 베유는 존경받는 프랑스 여성 정치인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프랑스 니스에서 유대인 집안의 막내딸로 태어난 시몬 베유는 1944년 게슈타포에게 체포당해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 수감되면서 부모와 오빠를 잃는다.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아 파리 법학부와 파리 정치대학에서 법학과 정치학을 공부한 뒤 1956년 치안판사가 돼 법조계에 뛰어들었다.

 1974년 5월 보건부 장관으로 임명된 시몬 베유는 같은 해 11월 26일 남성으로 가득한 의회에서 길이 회자될 연설을 남긴다. 후에 ‘베유 법’이라 불리는 임신 중단 합법화 법안 통과를 호소하는 연설이었다.

 당시 프랑스의 상황은 지금의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문화된 것이나 마찬가지였지만 낙태죄가 있었고, 임신 중단 수술이 불법임에도 불구하고 한 해 30만 명이나 되는 여성들이 임신 중단 수술을 받았다. 불법 시술이 성행해 한 해에 최소 300명이 사망했고, 미숙한 처지로 불임이 되는 경우도 허다했다. 많은 여성들이 제대로 된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한 채 건강권을 침해당하는 상황에서 프랑스 정부는 임신 중단을 막을 수 없다면 임신 중단을 음지에서 양지로 올려야 한다고 판단했다.

 책 「국가가 아닌 여성이 결정해야 합니다」는 시몬 베유의 의회 연설을 정리한 것이다. 그는 이 연설로 여성의 건강권을 보장하기 위해 낙태죄를 폐지하고 합법적인 의료시설에서 임신 중단 수술을 받을 수 있게 하자고 제안한다. 이와 함께 여성이 임신 중단을 결정하게 되는 심리적 요인과 경제적 문제에 관해 국가가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고지하자는 조치를 제시한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이후 임신 중단이 여성의 삶에서 일회적인 사건으로만 남을 수 있게 피임 교육을 적극적으로 시키겠다고 이야기한다.

 의회에서의 연설 전후로 시몬 베유는 반대 세력의 위협은 물론 끔찍한 모욕들을 감내해야 했다. 그러나 시몬 베유는 용감하고 단호한 투쟁으로 법안을 통과시켰다.

 추천의 말을 쓴 정의당 심상정 국회의원은 "이 책은 오늘날 프랑스의 출생률이 안정적이라는 사실과 함께 재생산권, 행복추구권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안겨 줄 것"이라고 말한다.

킨포크(Kinfolk) Vol. 30
킨포크 / 디자인이음 / 1만4천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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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을 자극하는 큼지막한 사진, 넉넉한 여백, 간결하고 세련된 서체, 소소한 일상의 에피소드까지 ‘킨포크(Kinfolk)’는 화려한 의상을 입은 모델 사진과 빽빽한 광고로 가득한 기존의 잡지와는 무언가 다르다. 그들은 명품의 가치를 홍보하기보다는 삶의 소박한 이야기들을 새로운 방법으로 다룬다.

‘킨포크’는 친족, 가까운 사람을 의미한다. 미국 포틀랜드에서 작가, 농부, 사진가, 디자이너, 요리사, 플로리스트 등 다양한 이들이 삶의 활력을 불어넣는 이야기를 소개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매료된 많은 이들이 모여 이제는 커다란 커뮤니티로, 나아가 ‘킨포크족’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날 정도로 하나의 문화현상이 돼 가고 있다.

킨포크 30호의 주제는 ‘환대(hospitality)’다. 환대는 열렬한 환영으로 너그러운 마음을 갖게 한다. 이웃과 친구, 가족과 함께 하는 기쁨을 이야기한다. 또 세상의 종말이 올 때 해야 할 일, 비밀번호로 알아보는 성격, 10대 셰프 플린 멕게리와 요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식사시간을 보내는 테이블보의 텍스타일의 아름다움에도 빠져본 다. 특히 이번 호에는 임경선 작가의 감성적인 에세이가 실렸다. 신주쿠 도심 한가운데 위치한 파크 하얏트 도쿄에서의 일, 아버지 발인 전날 밤에 나눈 속 깊은 대화를 통해 환대의 따뜻함에 한 발 더 다가간다.

쾌락독서
문유석 / 문학동네 / 1만3천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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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개인주의자 선언」, 「미스 함무라비」를 쓴 문유석 판사의 신작이다. 이 책은 글 쓰는 판사, 소문난 다독가로 알려진 작가의 독서 에세이로,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책 중독자로 살아온 이야기를 유쾌하게 담았다.

사춘기 시절 야한 장면을 찾아 읽다가 한국문학전집을 샅샅이 읽게 된 사연, 「유리가면」으로 순정만화 세계에 입문한 이야기, 고시생 시절 「슬램덩크」가 안겨 준 뭉클함, 김용과 무라카미 하루키 전작을 탐독한 이유 등 책과 함께 가슴 설레고 즐거웠던 책 덕후 인생을 솔직하게 펼쳐 보인다. 단, 아무리 대단해 보여도 딱딱하고 지루한 책은 읽지 않았다. 이 책은 읽고 싶은 것만 읽어온 편식 독서에 대한 이야기다.

필독도서 리스트가 주는 중압감에 주눅들 필요도, 남들은 다 읽는 듯한 어려운 책을 나만 안 읽은 것 같다는 이유로 초조해할 필요도 없다. 그저 내가 즐겁고 만족스럽다면 그만이라고 한다. 게다가 매체의 우열을 따질 수도 없을 만큼 TV와 인터넷에도 양질의 재미있는 콘텐츠가 넘쳐난다. 그럼에도 책을 읽고 싶다면 그것은 왜일까. 책과 함께 노는 즐거움의 특별함, 책에 대한 애정으로 가득한 이 책이 선사하는 작지만 중요한 물음이다.

조현경 기자 cho@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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