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상 인천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jpg
▲ 박병상 인천 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
소래포구. 여전히 제자리에 있어도 왠지 아련하다. 협궤열차의 추억 때문일까? 인천에 오래 살았어도 아련하다. 협궤 자리에 표준궤 복선으로 복원돼 많은 승객이 이용하는 수인선은 인천 원도심에서 연수구를 지나 소래포구까지 쾌적하게 연결하지만, 정겹지 않다. 협궤열차가 사라진 이후 소래포구는 인천 정서에서 멀어졌다. 낯설다. 몇 년 전, 일본의 마을운동가 몇 분과 발 디딜 틈 없는 소래포구 어시장을 지난 적 있다. 살아 펄떡이는 어패류들을 늘어놓은 좌판 사이를 어깨 부딪치며 한참을 걷고 식당에 앉은 그들은 상기된 모습이었다. ‘현대화’라는 명분으로 포구의 떠들썩한 흥정이 사라진 지 오래라면서 우리를 부러워했는데, 작년 3월 큰불이 난 이후 소래포구 어시장도 현대화를 꾀한다고 들었다.

 좁은 좌판이 합법화돼 밝고 넓은 상가로 변한다면 좋아지는 걸까? 동네의 단골 식당을 두고 굳이 소래포구로 나설 거 같지 않은데. 소래포구 너머 염전이 활발할 때, 1990년대 중반까지 소금을 생산했던 소래염전을 1970년대 후반에 자주 찾았다. 사진반 활동하던 대학생 때였다. 작품을 위해 서울 친구들을 몰고 갔던 소래포구는 기억에 있다. 갯골 건너는 철교의 궤도 사이의 침목을 진땀 흘리는 친구의 손을 꽉 잡고 아슬아슬 건넜는데, 지금은 안전하다. 관광객 위한 도보다리일 뿐인데, 포구도 예전과 다르다. 어선들이 연실 생선을 풀어놓지만 고즈넉함은 사라진 지 오래다. 포구를 압도하는 주위의 고속도로와 고층아파트들이 시야를 난폭하게 방해한다.

 요즘은 소래포구보다 습지생태공원을 이따금 찾는다. 염전이 닫자 갯벌의 풍광을 살린 공원으로 재탄생시킨 곳이다. 일부는 체험과 교육을 위해 염전을 보전했다. 인천대공원에서 장수천을 끼고 두 시간 천천히 걸으면 닿는다. 이팝나무 만개한 초여름이 멋있지만 나이 때문인지 낙엽 떨어지는 가을이 좋은데, 자전거 이용자에게 계절은 따로 없나보다. 눈비가 내리거나 찬바람이 불지 않는다면 북적인다. 개장 20년이 돼 가는 소래습지생태공원이 조금씩 메말라간다. 볕 잘 드는 곳을 차지한 풍차 석대가 눈요기에 좋더라도 우리 문화와 어울리지 않은데, 그 언저리가 영락없는 육지로 변했다. 바닷물이 원활하게 스며들지 못하면서 육지로 바뀐다고 변화 과정을 오래 살펴본 공원 관계자는 말한다. 드넓은 갯벌을 적시며 하루 두 차례 소래포구까지 거침없이 다가오던 바닷물이 방해받으며 생긴 일이다.

 송도신도시에서 소래포구 주변의 갯벌까지 매립하고 솟아오른 아파트단지들과 무관하지 않으리라. 세계 최대의 조수간만 차이로 드넓게 펼쳐졌던 갯벌은 이제 인천 해안에 손바닥, 아니 손가락만큼 남았지만 그나마 건강하지 않다. 다채롭던 생기를 잃어간다. 남은 갯벌의 염생식물은 찬란했던 선홍색을 잃었다. 적절한 바닷물이 스며들지 못하면서 퇴색한 소래생태습지공원을 어떻게 예전의 모습으로 회복시킬 수 있을까? 최근 그 문제를 연구한 학자는 염분이 적절한 농도로 스며들 수 있도록 바닷물을 끌어들이자고 근거를 들어 제안했다. 그렇게 조성한다면 인천 300만뿐 아니라 수도권 2천만, 나아가 세계에 자랑할 만한 해양습지공원으로 자리할 것으로 확신했다. 공업단지로 뭉텅뭉텅 사라지던 인천의 드넓었던 갯벌이 늘어날 시민에게 분양하려는 주택을 위해 거듭 매립된 이후 자취를 감췄다.

 그뿐인가? 해안을 차지한 주택과 공단, 그곳에서 서울과 수도권으로 빠르게 잇는 도로에 거푸 양보하면서 인천은 고즈넉한 해안을 잃었다. 이제 역사와 문화마저 콘크리트에 밟히며 메말라간다. 인천의 정취와 정서마저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인천시민은 어디에서 인천의 정서를 찾을 것인가? 휘황찬란한 송도신도시는 아니다. 더 멋진 콘크리트 건물이 들어서면 의미를 잃을 신기루에 지나지 않는다. 갯벌의 정취를 지닌 소래습지생태공원이 제자리에 있다. 여전히 인천다운 곳이다. 예산이 들어가더라도 인천의 정취를 마지막까지 간직하려는 해양성 습지생태공원을 되살려야 한다. 예전처럼 바닷물이 스며든다면 가능하다. 초고층 아파트단지가 강요하는 삶에 지친 시민들이 인천에 정주할 의미를 살갑게 느끼며 쉴 수 있지 않은가.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