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 인천시 연수구의 한 아파트에서 초등학교 2학년생 여아를 무참히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피의자 김모(17)양은 자신의 휴대전화를 빌리려던 피해자를 휴대전화 배터리가 없다며 자신의 아파트로 유인한 뒤 살해했다.

김 양은 최초 조사에서 우발적으로 살인했다고 주장했다. 사건 당시 김 양의 휴대전화 배터리가 실제로 없었다면 우발적 살인에 무게가 실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김 양 사건의 진실은 인천경찰청 사이버수사대에서 ‘디지털포렌식’을 담당하던 류현지(40)경위의 손에서 밝혀졌다. "담당 경찰에서 사건 당시 휴대전화가 켜져 있었는지 확인 요청이 왔어요. 우리가 분석해 보니 전화기가 켜져 있었을 뿐 아니라 사건 발생 직전 피해자 초등학교를 검색한 기록이 나왔어요. 학교의 주간학습계획표를 다운받았죠. 계획표에는 아이들의 하교시간이 나와 있었어요. 우발적 살인이 아닌 고의적·계획적인 살인이었던 거죠."

휴대전화 분석으로 나온 증거는 이 뿐만이 아니었다. 김 양은 사건 시간대에 수십 분씩 특정인과 통화한 사실도 드러났다. 공범 가능성이 있다는 유력한 증거였다. 또 김 양이 전날 밤새 잔인한 장면이 연출되는 고어물을 찾아본 기록도 나왔다.

‘포렌식’이란 디지털 저장장치(기기)에 있는 데이터를 복구하고 증거로서 법정에 제출될 수 있도록 데이터를 수집·처리·보관하는 ‘법과학’의 일종이다.

IT 관련 대기업에 다녔던 류 경위는 2005년 사이버 분야 채용을 통해 경찰이 됐다. 당시는 보안 관련 이슈가 확산되면서 경찰에서도 사이버대응테러센터를 만드는 시기였다. 경찰청 홈페이지에서 시동생의 경찰 합격 여부를 확인하다가 호기심이 생겨 직장을 바꾸게 됐다. 연봉은 기존 회사에 비할 수 없지만 충분히 만족하면서 경찰 업무에 집중하고 있다.

"2013년 전문수사관으로 임명받았어요. 당시 해당 분야에서 2년 이상, 컴퓨터 분석 40건이 넘으면 디지털포렌식 전문수사관 자격 요건이 됐죠. 올해부터는 기준이 강화돼 경력 5년 이상, 컴퓨터 분석 80건 이상이 됐답니다."

시대가 바뀌면서 휴대전화나 컴퓨터 등 디지털기기의 분석은 사건을 파헤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유력한 증거가 됐다. 인천경찰청은 지난 8월 기존 사이버수사대 내에 있던 포렌식 업무를 팀으로 꾸렸다. 디지털포렌식계 계장을 비롯해 총 5명이 근무하고 있지만 인천 전역에서 발생하는 사건들을 모두 챙기기에는 인력이 넉넉지 않다.

류 경위는 "디지털기기는 의도하지 않은 다양한 범죄의 흔적을 남긴다"며 "피의자에 대한 수사뿐 아니라 억울한 사람의 오해를 풀어주는 측면에서도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병기 기자 rove0524@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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