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신.jpg
▲ 이선신 <농협대학교 교수/법학박사 >
2019년 3월 13일 전국 1천340여 개 농·축협, 산림조합, 수협을 대상으로 실시될 예정인 제2차 동시조합장선거가 70여 일 앞으로 다가왔다. 지난 2015년 3월에 공공단체 등 위탁선거에 관한 법률(위탁선거법)에 따라 제1차 전국동시조합장선거가 실시된 후 "위탁선거법이 후보자의 선거운동 자유와 유권자의 알 권리 보장 측면에서 미흡하다"는 문제점이 조합원들과 언론에 의해 크게 지적됐었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국회에서의 입법 개선이 이뤄지지 않아 향후 실시될 제2차 선거도 제1차 선거 때와 마찬가지로 또다시 ‘깜깜이 선거’로 시행될 우려가 매우 크다. 이에 따라 지난 11월 29일 전국 농·축협 조합장들은 위탁선거법을 연내에 개정해 달라고 국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건의문을 전달했다. 현재 국회에는 위탁선거법 개정안이 소관 상임위원회인 행정안전위원회에 계류돼 있지만, 심사 우선순위에서 다른 법안들에 밀려 개정안 논의가 진척되지 못하는 답답한 상황이다.

 현행 위탁선거법의 선거운동에 대한 규제는 너무 지나치다. 후보자가 어깨띠를 두르고 유권자에게 명함을 돌리는 등 극히 제한적인 선거운동 방법만 허용되고 그 밖의 모든 행위는 불법이다. 과거에 농협법 등의 규정에 의해 허용되던 공개토론회, 합동연설회마저 금지하고 있다. 협동조합 임원선거는 단순히 임원을 선출하는 절차에 그치지 않고 그 절차·과정을 통해 조합원들이 민주주의를 학습하고 실천·체험하는 교육의 장(場)이 된다는 점에서 특히 중요하다. 협동조합의 임원선거가 협동조합 기본 원칙 중 하나인 ‘민주관리의 원칙’에 부합하기 위해서는 자유롭고 다양한 선거운동이 보장돼야 하며, 후보자 간에도 공평한 기회가 부여돼야 한다. 그런데, 위탁선거법은 후보자의 ‘알릴 권리’와 조합원들의 ‘알 권리’를 과도하게 제약함으로써 선거가 ‘선거답지 않게’ 시행된다. 이러다 보니 후보자들은 정책·공약의 대결 등 공개적 선거운동이 아닌 음성적 선거운동(금전 살포, 연고 활용 등)에 더 의존하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위탁선거법의 근본적인 문제점은 협동조합의 자율성을 침해할 우려가 크다는 점이다. 협동조합의 운영상 가장 존중돼야 할 핵심가치는 ‘자율’이다. ICA(국제협동조합연맹)가 정한 협동조합 운영 7대 기본 원칙에는 ‘자율과 독립의 원칙’이 포함돼 있다. 우리 헌법 제123조 제5항, 농협법·수협법 제1조 등에서도 협동조합의 자율을 보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운영에 대해 많은 법적 규제를 하고 있다. 특히, 사법인성(私法人性)이 강한 협동조합의 임원선거를 공직선거처럼 법으로 엄격히 규제하고 국가기관(선거관리위원회)의 관리하에 전국 동시선거로 시행하는 입법례는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들며, 협동조합의 자율 및 다양성과 결사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세계적 협동조합 모범국가로 지목되는 덴마크에는 협동조합에 관한 법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국가가 만든 ‘법’이 아니라 조합원들이 스스로 만든 ‘자치규범(정관·규정 등)’에 의해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협동조합 임원선거를 자율에 맡기면 부정·혼탁선거가 더욱 확산되리라는 우려도 수긍이 간다. 그렇더라도, 자율규제를 기본원칙으로 하고 법에 의한 규제는 차선적으로 ‘필요한 범위 내에서만’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래야만 조합원들의 자율·민주역량을 점진적으로나마 키워 나갈 수 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하면 위탁선거법 개정에 관해서는 깊게 검토해야 할 사항들이 꽤 많다. 그러나, 지금은 제2차 선거가 코앞에 다가온 상황이므로 우선 시급한 몇 가지 사항(선거운동 방법의 확대 등)만이라도 먼저 빨리 개정해야 한다. 국회는 물론 중앙선관위와 농림축산식품부 등 관련 기관이 적극 나서서 사안의 시급성과 위중함을 인식해 조속히 입법을 마쳐야 한다. 또다시 ‘깜깜이 선거’가 이뤄진다면 조합원과 국민들의 실망과 비판이 크게 우려된다. 민주주의는 공직선거뿐 아니라 우리 주변의 생활 속 자치선거를 통해 성숙해진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