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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채훈<역사소설가/삼국지리더십연구소 소장>
동북아 3국의 관계가 기묘하게 전개되고 있는 징후가 여럿이다. 40년 전 당시의 중국 최고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이 결정한 개혁·개방정책의 성공으로 눈부신 성장을 거듭해온 중국이지만 최근에는 미국과의 통상전쟁을 비롯해 주요 국가들의 중국 굴기에 대한 견제 움직임이 뚜렷해지자 개방 전면 확대라는 승부수를 던졌다. 지난 18일 베이징의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개혁·개방 40주년 기념식에서 시 주석은 개혁 심화와 함께 고품질 경제 발전을 추진하겠다고 밝히면서 외국인 투자자의 권리 확대 등을 내걸었다. 간단치 않은 중국 경제의 불안 요소를 잠재우겠다는 것인데 쉽지 않다는 것이 내외 전문가들의 지적이나 의지는 분명해 보인다.

 한편, 우리와 일본은 과거를 직시하면서 미래지향적 양국 관계를 열기로 약속한 김대중-오부치 게이조 공동선언 20주년을 맞이하면서 약속은 내팽개친 채 역주행을 거듭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도처에서 나오고 있다. 일본은 과거를 모르는 체하고 우리는 미래를 열 의지가 없어 보인다. 아베 총리는 얼마 전 우리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사과 편지를 쓸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털끝만치도 없다"고 단호히 답변했다. 그리고 연례적으로 해오던 한일의원연맹 총회 인사말도 하지 않았다. 위안부·강제징용·욱일기 게양 문제 등등을 보면 한·일 양국은 비우호적 국가를 대하듯이 서로를 흘겨보고 있다. 그러면서 일본은 뒤쪽으로 열심히 중국과 관계 개선을 도모하고 있다. 지난번 아베 총리의 중국 방문 이후 그런 징후는 도처에서 발견된다. 특히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행보에 대해서 이미 손을 잡았다고 보는 게 현실적이다.

 중국과 일본의 전략적 제휴는 갈수록 늘어날 판인데 우리와 일본의 관계는 북한의 핵 문제 해결이나 경제적 위기 돌파를 위해 서로 협력해서 얻을 수 있는 숱한 이점을 방치하고 있다. 일본 측에서는 한국이 국제적인 약속도 안 지키고 국내 상황이 바뀌면 조약의 해석도 뒤집는다며 비판한다. 우리 시민사회의 강인한 역사인식을 전혀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우리는 오래전부터 일본을 깔보는 의식이 있는 데다 아베를 비롯해 현 일본 수뇌부가 전후 세대로서 과거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은커녕 극우적 태도로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만들려는데 대해 비판 이상의 격앙된 분위기다.

 한·일 관계가 이렇게 방치되면 결국 어부지리를 얻는 쪽은 중국이다. 미국은 무슨 속셈인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이익을 볼 가능성은 별로 없다. 혹여 우리와 일본 한 쪽을 택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면 우리가 불리하다. 더구나 북한과의 관계 진전에 있어서도 타격을 받게 된다.

 한·중·일 삼국 관계는 고사성어 어부지리(漁父之利), 중국에서는 어인득리(漁人得利)라고 하는데 딱 그 모양이다. 중국의 전국시대 세객(說客) 소진의 동생 소대의 얘기다. 그 당시 조(趙)나라는 연(燕)나라를 치려고 했다. 이에 소대가 조왕(趙王)을 만나 이런 말을 했다. "물가의 조개가 속살을 드러내고 있을 때 도요새가 긴 부리로 속살을 내리 쪼는데 조개가 입을 꽉 다물어 부리를 물었지요. 도요새는 그제야 ‘오늘도 비가 오지 않고 내일도 오지 않으면 아마 말라 죽을 조개가 있겠지’ 하고 위협하니 ‘흥, 그렇게 되면 도요새 한 마리가 죽게 될 거야’라고 대답합니다. 이렇게 서로 다투고 있을 때 지나가던 어부가 ‘웬 횡재냐’ 하고 둘을 모두 잡아 구럭에 처넣었지요. 지금 조나라가 연나라를 쳐서 힘이 빠지면 진(秦)나라가 마치 어부처럼 이득을 보지 않을까요."

 조왕은 이에 깨닫는 바가 있어 연나라 침공 계획을 접고 오히려 외교에 뛰어난 인재를 기용해서 전략적 유대관계를 강화했다는 것이다.

 튼튼하고 활력 있는 한국이 있어야 일본 열도의 안보 이익과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일본의 아베 총리나 일본의 지도부가 모르는 걸까? 주일 미군과 일본의 후방 지원이 한반도의 안보 지형을 안정시킨다는 사실을 우리가 부정하는 것일까? 결코 그럴 리가 없다. 충분히 알 만큼 알고 있다고 보는 것이 정상적이다. 그런데 왜? 상호 전략적 방치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보이지 않는 것인지 답답하다. 안보와 경제는 잃고 나서 뼈저리게 깨닫는 법이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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