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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연시, 각종 기념일과 명절을 맞이해 주변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에게 전하는 감사 인사는 손 글씨로 쓴 편지가 아닌 문자나 이메일 혹은 SNS로 대체된 지 오래다. 빠르고 신속하게 인사를 전할 수 있는 각종 매체들이 갖는 장점과 이미 변화의 흐름 속에 정착된 온라인 감성을 되돌릴 수는 없겠지만 때론 우편함을 살펴보며 집배원 아저씨가 가져올 편지 한 장을 기다리던 시절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편지지를 고르고, 썼다 지웠다 적절한 문구를 고민하고, 책에 있는 좋은 글귀들을 인용하기도 하며, 말린 꽃이나 낙엽들을 소중히 첨부해 빨간 우체통에 편지를 넣은 후 상대방에게 무사히 전달되길 기다리는 마음은 아날로그식 손 편지에서만 느낄 수 있는 설렘이다. 오늘 소개하는 영화는 이런 옛 감성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1940년 개봉한 영화다 보니 당연히 휴대전화도, SNS도 없다. 사서함을 통해 편지를 주고받는 남녀의 로맨스를 그린 작품 ‘모퉁이 가게’를 소개한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위치한 모퉁이 가게 마더첵 잡화점에서 근무하는 클라락은 최근 미지의 여인과 펜팔을 시작했다. 단순한 호기심에서 시작된 펜팔이었지만 클라락은 그 여인에게서 세속적인 사람들과는 다른 섬세한 감정과 위트, 지성미 등을 파악하고 이내 마음을 빼앗긴다. 이름도, 사는 곳도, 얼굴도, 나이도 모르지만 두 사람 사이에 진지한 감정이 자라난다. 반면 잡화점의 일상은 매일이 전쟁이었다. 연말 시즌에 들어온 신입사원 노박은 고객 응대와 실적에 있어서 나무랄 데 없었지만 클라락과는 사사건건 각을 세웠다. 하나부터 열까지 의견의 합일을 볼 수 없었던 두 사람은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대기 일쑤였다.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시점, 클라락은 첫 번째 데이트 약속을 잡는다. 설레는 마음으로 약속 장소에 다다른 클라락은 카페 창문 너머로 노박을 보게 된다. 매번 의견 충돌이 있었던 동료가 펜팔로 사랑을 키운 상대임을 알게 된 그는 우연인 척 노박과 합석하고, 그녀에게 데이트 상대를 기다리고 있다는 말을 전해 듣는다. 선뜻 자신이 펜팔 상대였음을 시인하지 못한 클라락은 이후 복잡한 감정 속에서 노박을 대하게 된다.

영화 ‘모퉁이 가게’는 알 수 없는 대상과의 정서적인 교감을 재치 있게 그린 작품이다. 흑백 영상과 편지라는 소재를 제외하면 올드함을 느낄 수 없는 세련된 연출과 맛깔나는 대사들이 눈과 귀를 즐겁게 한다. 이 작품의 백미는 펜팔이 주는 상대방에 대한 기대와 환상, 조심스레 요동치던 심장박동과 대상을 알게 된 후 느끼는 감정의 변화에 있다. 뜻밖의 대상과 직면하며 겪게 되는 복잡한 감정 속에 애틋한 로맨스는 더욱 깊어지고, 사랑의 결실을 맺는 영화의 마지막은 기적과도 같은 순간으로 다가온다.

영화 ‘모퉁이 가게’는 시간과 정성을 담아 한 자, 한 자 눌러 담은 손 편지처럼 사랑의 설렘과 떨림을 진실되게 전하고 있다. 며칠 남지 않는 올 한 해, 손 편지로 진심을 전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마무리가 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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