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 동구 화수동(花水洞)은 한 세기의 역사를 고스란히 품은 동네다. 구(舊)한말 서양 외세에 처음으로 문호를 개방한 근대 문물의 산실이자 인천 근현대사의 시작점이다. 하지만 동구는 시대 흐름에 밀려 도시개발의 수혜지에서 항상 제외됐다. 이곳의 시간은 말 그대로 1960∼1980년대에 멈춰 섰다. 붉은 색 벽돌로 지은 지 반세기가 넘는 일본식 2층 집들이 아직도 즐비하다. 폐공가로 변해 무너져 내린 담벼락과 집들이 부지기수다. 지역 항만과 부두, 거대한 공장들의 배후주거지로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과거의 영광은 풍문으로만 들린다. 젊은이들이 외면하는, 삶의 고된 흔적만 간직한 이곳에 과연 희망의 씨앗은 싹틀 수 있을까.

 정부의 뉴딜사업 시범지역으로 선정돼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는 동구 ‘화수마을’을 찾았다. 이곳이 다시 꽃밭 가득한 희망의 주거공간으로 탈바꿈할 수 있을지 그들의 삶과 이야기를 담아 봤다. <편집자 주>

# 바닷물이 들던 ‘무네미’ 마을

 화수동은 인구 1만여 명에 74만㎡ 규모다. 일본의 개항 요구에 대비해 1879년 포대와 진지를 갖춘 화도진이 설치될 때까지도 초가 몇 채밖에 없는 작은 포구였다. 하지만 1883년 개항을 기점으로 큰 변화를 겪는다. 활발한 선교활동과 부두의 발달, 임해공업 집적화로 각지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번화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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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수부두에 설치된 등대모양 조형물.
 지금의 화수동은 1913년 인천부 부내면으로 불렸다. 1914년 신촌리, 화수동, 수유리를 통합해 이 세 마을의 첫 글자를 따서 신화수리(新花水里)로 개칭됐다. 일제 때인 1936년 도시 주민들의 동원체제인 정회(町會)제 실시로 화수정이 됐고, 해방 후 1946년 1월 1일 동명 개정으로 지금의 명칭인 화수동이 됐다고 한다. 이는 기존 화도리와 수유리의 머리글자를 따서 생긴 이름이다.

 1951년 화수동은 화수1·2·3동, 송현4동으로 나뉘었다. 이 중 화수1·3동은 분동 및 인근 화평동과 통합해 1998년 10월 현재와 같이 화수1·화평동으로 묶였다. 18만1천㎡의 화수1·화평동은 도심의 지속적 쇠퇴로 민간재개발사업이 추진되고 있지만 여전히 본궤도에 오르지는 못하고 있다.

 도시재생 뉴딜사업의 대상지가 된 화수2동의 경우 1934년 인천부 화도동으로 불렸다. 이후 신화수리로 개칭된 뒤 역시 화수1·2·3동, 송현4동으로 나뉘어졌다. 이후 1977년 5월 10일 인천시 조례에 의해 화수2동으로 개칭된 뒤 현재에 이르고 있다.

 꽃(花)과 바닷물(水)을 뜻하는 한자어를 지닌 화수동은 인천의 다른 지역이 그렇듯이 한때는 바닷물이 넘어 들어온다는 순수 우리말인 ‘무네미 마을’로 불리기도 했다.

 ‘화수정원(花水情園)마을’이란 이름은 2017년 동구가 도시재생을 위해 새롭게 부여한 것이다.

# 부두와 공장 배후주거지로 최고의 전성기

 화수2동은 해안에 접해 오랜 역사를 지닌 화수부두를 끼고 있다. 또 ‘인천 돈의 절반이 모이는 곳’이라는 북성포구, 만석부두와도 지척거리다. 화수부두는 과거 우리나라 3대 어항으로 꼽혔다. 오죽하면 이곳을 지나다니던 개들도 돈을 물고 다녔을 정도로 인파가 북적거렸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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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수부두에 정박해 있는 어선들.
 하지만 이제는 만선의 기쁨을 안고 돌아오는 뱃사람의 웃음이 사라진 지 오래다. 1970년대 후반 도크 건설로 연안여객선과 어선들이 지금의 연안부두로 빠져나가면서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뒤늦게야 수산물 직매장과 현대식 회센터 등을 지어 놨지만 과거의 명성을 되찾기에는 역부족이다.

 화수2동은 기계공업으로도 유명했다. 일제강점기에는 조선기계제작소의 대규모 기숙사로 이곳이 활용됐다. 이 같은 기계업종을 위시한 공업의 역사는 1960~1980년대 동일방직과 한국기계공업, 일진전기, 두산중공업, 현대제철 등 굵직한 기업들로 대변된다. 뱃사람과 상인, 근로자들의 배후주거지로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1990년대에는 도시기반시설 정비 및 주거환경정비사업이 진행됐고, 미륭·동부아파트 등 일부 주택 신축도 이뤄졌다.

 하지만 신흥 부두의 개척으로 인한 부두의 쇠락과 2000년을 전후한 글로벌 경기 침체로 이곳의 기계·금속 등 전통 제조업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또 신규 택지지구의 형성으로 원도심 주거지의 노후화는 가속화돼 화수동의 활력은 급격히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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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수부두 전경.
# 꽃은 지고 시간이 멈춘 마을

 과거 영화(榮華)의 흔적을 찾기 힘들게 된 화수2동은 젊은 사람들이 떠나고 ‘중심가’에서 벗어난 지 오래다.

 이곳의 인구는 통계가 시작된 1993년 이래로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1993년 화수2동의 인구는 총 1만3천350명이었으나 현재는 약 5천 명이 감소한 8천여 명이 살고 있다. 화수정원마을은 더욱 심각하다. 2013년 812명이었던 주민 수가 2014년 765명으로 50명 가까이 줄었다. 이후 2015년 738명, 2016년 717명, 2017년 715명 등 계속해서 주민들이 마을을 떠나고 있다.

 특히 화수정원마을에 남은 이들 중에는 사회적 관심이 절실한 이웃들이 많다. 이 마을은 65세 이상 인구가 20%를 넘어서 초고령화가 진행 중이다. 이곳의 65세 이상 노인은 145명으로 전체 인구의 20.3%를 차지한다. 또 기초생활수급자 27명(3.8%), 장애인 30명(4.2%), 홀몸노인 24명(3.4%) 등 취약계층도 11.4%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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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수부두에 늘어선 배.
 마을이 쇠퇴하다 보니 주민들의 거주환경 만족도도 낮다. 노후 주택의 붕괴 우려는 물론이고 방범과 치안상태가 불안하며, 화재 위험 등에 주민들이 노출돼 있다. 마을 북쪽은 대규모 공장지역과 맞닿아 있어 인근 공장의 분진과 악취, 물류 운송을 위해 도로를 지나는 대형 트럭들의 소음과 매연 등이 심각해 주민 삶의 질 개선이 시급한 실정이다.

 그나마 1990년대 마을 일부를 대상으로 주거환경개선사업이 이뤄졌다. 당시 기반시설 정비로 마을 일부 골목은 비교적 깨끗해졌고, 도로와 주차장 등 주민들을 위한 시설도 어느 정도 모습을 갖추게 됐다. 하지만 여전히 마을 내 건축물 대부분이 노후화된 만큼 개선이 시급하다. 화수정원마을 건축물 120개 중 20년 이상 된 건축물은 87.5%인 105개에 달한다. 40년 이상 된 건축물도 56개(46.5%)에 이른다.

 지역 쇠퇴로 인한 공·폐가 건축물은 총 18개(15.0%)로 주로 마을을 둘러싼 대로변에 있어 마을의 이미지를 어둡고 부정적으로 만들고 있다.

# 고된 역사가 품은 자원

 화수정원마을 남쪽으로는 주거지역, 북쪽으로는 대규모 공장지역이 있다. 산업지역과 인접해 불편한 점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식당, 상점 등 이곳 근로자들의 소비가 필요한 상업지역으로 유리한 입지를 가지고 있다. 교육시설로는 만석초등학교와 송현초, 화도진중 등이 있다. 동구의 지속적인 학령인구 감소로 학교시설의 활용도 고민할 문제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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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산물 축제를 찾은 시민들.
 다행히 과거 주거환경개선사업으로 도로와 주차장, 공원 등 기반시설 비율은 원도심 중에서 높은 편이다. 화수2동 지역의 경우 어린이공원 1개소와 소공원 1개소, 공영주차장 2개소와 노상주차장 등이 운영 중이다.

 화수정원마을의 장점은 무엇보다 역사와 문화다.

 마을에서 10분만 걸으면 인천시 지정기념물 2호인 화도진지에 닿는다. 화도진은 과거 중국과 일본을 비롯해 미국 등 열강으로부터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해 세워진 요새다. 병영과 한미수호조약기념비, 유물전시관 등이 있어 과거 수도로 통하는 요충지로서의 인천을 다시 만나 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마을과 500m 떨어진 화도진공원은 한미수교 100주년을 맞아 조성한 곳으로 휴식과 역사를 동시에 제공한다.

 마을을 조금만 나서면 일진전기 인천공장도 있다. 1938년 도교시바우라 제작소에서 출발했고, 인천근대 미래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인천의 대표 어장이었던 만석부두와 화수부두도 인접해 있다. 구는 이 같은 화수정원마을의 입지적 우수성을 마을 재생에 적극 활용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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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잿빛 마을, 도시녹화 ‘그린 리모델링’

 화수정원마을은 동구 화수동 7-36 일원 2만1천277㎡ 규모다. 현재 313가구에 715명이 살고 있다.

 이곳은 재개발로 떠들썩한 화수·화평구역에도 포함되지 못한 채 주목받지 못한 동네였다. 하지만 2017년 3월부터 동구와 인천도시공사, 마을 주민과 활동가들이 모여 이곳을 정부가 추진하는 도시재생 뉴딜의 시범사업 대상지로 이름을 올렸다. 구는 ‘화수2동’이라는 딱딱한 이름 대신 미래의 비전을 담아 ‘화수정원마을’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달았다.

 구와 도시공사는 마을 재생을 위해 그동안 5차례가 넘는 주민설명회를 열어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사업계획과 세부실행계획을 세웠다. 그 결과, 2017년 12월 뉴딜 대상지 선정 및 지난해 8월 국비 지원 확정이라는 쾌거를 이뤘다.

 이곳의 사업 유형은 가장 소규모(5만㎡ 이하)인 ‘우리 동네 살리기 주거재생형’이다. 사업기간은 2018년부터 2020년까지 3년으로 총 사업비 160여억 원이 투입된다. 국비·지방비 90억 원과 도시공사 60여억 원 등이다.

 구는 화수사거리 일대를 ‘다시 꽃을 피우는 마을’로 만들 계획이다. 마을 곳곳에 옥상정원을 조성하고 텃밭 가꾸기 등 녹화 작업을 벌인다. 기능복합형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고 집수리 및 취약계층 주거지원사업이 진행된다.

 폐·공가는 철거해 마을 주민과 청년·신혼부부가 거주할 수 있는 주택으로 새 단장하고, 유휴 공간은 사랑방(커뮤니티)과 공원을 만들 계획이다. 주민들이 요청한 공·폐가와 골목 정비를 비롯해 마을쉼터·주차장 등의 기반시설 개선, 폐쇄회로(CC)TV와 방범창 등 방범시설 확충도 진행된다.

 아울러 쓰레기 분리배출시설과 보안등·태양광 등도 곳곳에 설치해 마을 주민들이 생활편의성을 높이고, 도시농업 등 마을 공동체사업도 발굴해 지역의 고유한 브랜드를 개발, 상품화할 계획이다.

# 쾌적한 주거와 소중한 일자리가 생겨나는 마을

 화수정원마을은 주거재생과 일자리 창출을 위한 기반 구축이 가장 중요하다.

 행복주택을 짓기 위해 공영주차장과 공가 부지를 활용해 48가구의 임대주택을 건설할 예정이다. 임대주택은 인근 청년근로자들을 위한 주거지가 될 수 있고 원주민들의 새로운 보금자리가 될 수도 있다.

 행복주택을 통한 청년층 유입 외에도 도시재생사업에 따른 자연적 일자리 확대책도 마련됐다. 사업을 통해 조성되는 공영주차장, 공원, 임대주택 등의 위탁관리를 주민이 맡아 주민 일거리 및 소득 창출에 기여할 예정이다. 또 아동인구가 적어 이용도가 낮은 어린이공원은 공동 텃밭과 온실로 만들어 주민들에게 소일거리를 제공한다. 주민들이 재배한 농작물은 인근 사회적 기업 및 상가 등과 연계해 판매망을 확보하고, 임대주택 내 노인쉼터는 지역자활센터와 연계하고 노인 공동작업장도 마련될 예정이다. 마을 공동체 회복도 중요하다. 마을의 공영주차장, 공동작업장, 공동텃밭을 운영하게 될 ‘마을관리회사’를 만드는 것이 그 대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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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수동 골목에 그려진 벽화.
 마을관리회사는 지역주민을 중심으로 지역 관련 단체, 공공기관 등이 직접 구성해 운영한다. 공동작업장과 공동텃밭 등에서 발생한 수익은 마을기금으로 적립해 주민들의 필요에 따라 복지비용이나 텃밭 확대 등 실질적인 사업에 활용된다. 구는 이를 위해 도시재생활성화기금 설치와 관련된 조례를 이미 제정했다.

 구 관계자는 "화수정원마을은 산업지역과 주거지역의 중간지대에 있어 도시재생의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며 "산업과 주거, 역사와 문화가 어우러지는 마을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연령의 주민들과 함께 고민하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김종국 기자 kjk@kihoilbo.co.kr

 김희연 기자 khy@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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