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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옥엽 인천시 역사자료관 전문위원
통상 해가 바뀌면 한 해(歲)의 시작을 12지지(地支) 동물의 이미지를 통해 예견해 보려는 것이 오랜 관습이다. 2019년 기해년(己亥年)을 상징하는 동물은 글자 그대로 돼지(亥)다. 돼지는 생김새에서 짐작되듯이 일반적으로 재력을 상징하고 부귀를 나타내는 동물로 알려져 있다. 또 굿이나 고사를 지낼 때 제물로도 사용된다. 돼지머리를 놓고 절하며 입과 귀에 돈을 꽂는 의식인 두개숭배(頭蓋崇拜)사상은 민속학에서 인간세계의 간절한 희망을 신의 성역에 전달하기 위해 돼지머리를 통한 교류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던 옛 조상들의 의식에서 비롯됐다고 풀이한다.

 우리 역사 속에서 돼지는 어떻게 묘사되고 있을까? 몇 가지 사례를 통해 국가의 기틀과 대체(大體)를 세우는 데 중요한 길잡이 역할을 하는 영적인 동물로 여겼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유리왕 편’에, 춘삼월 하늘에 제물로 바치기 위해 기르던 돼지가 달아나자 왕이 설지(薛支)에게 잡으라 명했다. 설지는 국내성 위례암에서 돼지를 잡아 그곳 주민에게 기르도록 맡긴 후 왕에게 보고하기를 ‘국내성 위례암의 산수가 깊고 험하며 땅은 오곡을 심기에 적당하니 도읍을 옮기면 민리(民利)가 무궁하고 병란도 면할 것’이라고 전했다. 다음 해 겨울 10월 유리왕은 국내성으로 수도를 옮겼다.

 「고려사」 ‘고려 세계 작제건 조’에 고려 태조 왕건의 조부인 작제건이 (서해) 용왕의 딸 용녀와 결혼한 후 용왕으로부터 돼지 한 마리를 얻었다. 용녀가 처음 개주(開州)의 동북쪽 산기슭에 1년을 살았는데 돼지가 우리에 들어가지 않자 돼지에게 말하기를 ‘만약 이 땅이 살 만하지 않다면 나는 장차 네가 가는 바를 따르겠다’라고 했다. 이튿날 아침 돼지가 송악(松嶽) 남쪽 기슭에 이르러 드러누우므로 드디어 새 집을 지으니 곧 강충(康忠, 왕건의 5대조)의 옛집이었다. 돼지가 안내한 송악산 기슭에 터를 잡고 살면서 아들 용건을 낳았으니 용건은 왕건의 아버지이다. 당시 돼지는 임금이 나올 터를 가르쳐 준 것으로 풀이된다. 이렇게 고구려와 이를 계승한 고려는 풍요로움과 번영의 상징인 ‘돼지’의 도움을 받아 도읍지를 정하고 있다. 또, 「삼국사기」 ‘잡지(雜志) 제사(祭祀) 조’ 에 언급된 "고구려는 항상 3월 3일에 낙랑의 언덕에 모여 사냥하고 돼지와 사슴을 잡아 하늘 및 산천에 제사 지낸다" 는 내용을 통해 돼지를 하늘에 제사 지낼 때 사용할 희생으로 영적인 동물로 인식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2019년은 국가적으로도 기억해야 할 역사적 사실이 있다. 3·1만세운동 100주년(3.1)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4.11)이 그렇다. 인천에서도 3·1만세운동과 임시정부 수립과 관련된 역사적 흔적들이 산재해 있다. 창영학교, 만국공원, 황어장터, 강화도의 만세시위를 비롯한 각 섬에서의 횃불시위, 그리고 한성 임시정부 수립을 위한 13도 대표자회의가 인천 만국공원에서 시도되었던 역사적 사실이 엄존하고 있다. 그간 우리나라 근현대 산업화의 견인차가 되었던 인천은 이제 2019년을 맞으면서 공업도시로서의 이미지를 탈피하고 ‘새로운 인천’으로 거듭 태어나야 할 전환점에 서 있다.

 더구나 ‘인천특별시대’를 지향하는 입장에서라면 더욱 2030여 년 오랜 역사를 지닌 ‘역사도시 인천’을 알려야 하는 과제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새로운 인천’을 알릴 수 있는 방안을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그동안도 인천을 홍보하는 여러 방법들과 노력이 있었겠지만, 2019년 ‘역사 도시 인천’을 알릴 수 있는 시도로써 2030여 년 인천의 역사와 문화를 담은 풍성한 콘텐츠를 바탕으로 엽서나 우표 발행은 어떨까? 또는 100여 년 전 있었던 인천에서의 3·1만세운동 상황과 만국공원에서의 한성 임시정부 수립을 위한 13도 회합 등을 현장에서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는 ‘인천 근대 역사 체험 마을’ 혹은 ‘인천 개항장 체험 마을’ 조성은 어떤가? 다시 말해, 100년 전 인천을 재현하고 체험할 수 있는 역사 공간을 마련해서 교육과 홍보를 겸할 수 있게 하는 것도 ‘원도심 활성화’의 주요 테마 중 하나이고, 이 시대 인천을 알리는 좋은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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