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연.jpg
▲ 김사연 수필가
기해(己亥)년, 돼지해의 새날이 밝았다. 송아지의 어미는 소, 망아지의 어미는 말, 강아지의 어미는 개라고 부르듯 돼지(도야지)의 어미는 ‘돝’ 이었는데 현재는 어미든 새끼든 돼지로만 불리고 있다. 저금통이 하나같이 퉁퉁한 돼지로 통일돼 있듯이 돼지는 부를 상징한다. 건강한 아이를 보고 ‘돼지같이 통통하다. 돼지처럼 잘 먹는다’고 던지는 말은 흉이 아니라 건강과 재산을 기원하는 덕담이기도 하다. 사업 번창을 기원하는 고사 상의 방긋 웃는 돼지머리 입과 코에 돈을 넣는 이유도 재물을 불러달라는 뜻에서다.

 하지만 인간이 갈망하는 돈은 사용 방법에 따라 덕이 될 수 있고 과욕은 해(害)가 될 수도 있다. 자신의 재산을 털어 1천100명의 유대인 생명을 나치의 독가스실에서 구한 독일인 사업가의 선행을 그린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주인공 ‘오스카 쉰들러’의 행동은 가치 있게 돈을 쓰는 방법을 현대인들에게 가르쳐 줬다.

 요즘 인천남동구약사회 회원들은 영하 14도의 혹한을 녹이는 훈훈한 이야깃거리를 세상에 전하고 있다. A씨는 잘 알려진 한미약품의 영업사원으로 인천남동구에서 15년간을 근무하고 있다. 불행하게도 그는 얼마 전 신장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치료를 위해 휴직을 하고 요양을 해야 할 처지이지만 그는 지금도 약국을 돌며 영업 활동을 하고 있다. 병원비와 가족의 생활비를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증상이 악화돼 항암제 투약으로는 효과가 없어 고가의 면역항암 주사제를 맞지 않으면 안 된다. 딱한 사정을 알게 된 길병원 버스정류장 옆에 위치한 이레약국 고은정 약사는 약사회 밴드에 이 내용을 올려 온정의 손길을 회원들에게 호소했다.

 약사회 이사회를 통한 공식적인 모금이 아니고 아름아름 사적인 대화로 시작했지만 2일 만에 500여만 원이 모금됐다. 약국의 대표약사뿐 아니라 직원들까지 십시일반 협조한 덕분에 모금한 후원금은 9일 만에 2천만 원이 돼 지난달 30일 본인에게 전달했다고 한다. 약사회원들은 그가 몸담고 있는 굴지의 한미약품 제약회사도 반응을 보여주기를 기대하고 있는 중이다.

 1일자 조선일보에는 기부에 대한 웃지 못 할 에피소드가 실려 있다. 2018 아세안축구연맹(AFF) 스즈키컵에서 우승한 박항서 베트남 국가대표 축구팀 감독 덕분에 베트남 국민들의 한국인에 대한 존경심은 하늘을 찌를 듯하다. 그들은 미국과의 전쟁 당시 한국이 그들에게 총부리를 겨누었던 기억을 지워버리고 박항서와 한국을 하나로 보고 존경과 호의를 베풀고 있다. ‘응우옌 딘 뜨라’라는 베트남 전국에 10여 개의 체인점을 거느린 사업가이다. 그는 18경기 무패 행진을 기록한 박항서 감독의 업적에 감사하는 뜻에서 한국인들에게 큰 선심을 베풀기로 했다. 그의 상점을 방문하는 한국인에게 비싼 가죽 구두나 핸드백 중 한 개를 선물하겠다는 것이다.

 한국인이란 베트남에 거주하며 그들과 동고동락하는 한국 교민을 말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날 그 소문을 들은 한국 단체관광객들이 버스를 타고 몰려와 물건을 싹 쓸어 갔다고 한다. 물건을 공짜로 가져갈 자격은 박항서 감독뿐이겠지만 그는 그럴 사람이 아니다. 한데 박 감독도 마다한 ‘딘 뜨라’ 사장의 호의를 엉뚱한 한국 관광객들이 가로챈 것이다. 이런 부끄러운 사실이 알려지자 한국 교민들은 ‘딘 뜨라’ 사장의 호의에 보답하고 손실을 보상해 주기 위해 너도나도 그의 상점을 방문해 여러 개씩 상품을 구입했다고 한다.

 남동구 약사들이나 베트남의 ‘딘 뜨라’ 사장처럼 자신의 소중한 재물을 아무 대가 없이 베푼 기부 문화는 세상을 훈훈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남의 것을 공짜로 얻으려는 일부 한국 관광객들의 부끄러운 행동은 박항서 감독이 애써 쌓아올린 대한민국의 명예에 먹칠을 했다. 올해는 사랑의 온도탑 열기가 저조하다고 한다. 불경기 탓도 있지만 모금한 성금이 ‘어금니 아빠’ 같은 사기꾼 계좌로 빠져 나갈지 모른다는 불신감도 한몫을 담당했다고 한다. 기해년 돼지해에는 각 가정에 재물이 차고 넘쳐 어려운 이웃에게 베푸는 기부 문화가 활성화되기를 기원해 본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