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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덕우 인천개항장연구소 대표
1903년 1월, 아마도 지금쯤이면 한국 최초의 이민자를 태운 ‘갤릭호’가 태평양을 통과하고 있었을 것이다. 1902년 12월 22일 월요일 하와이 이민 제1진 121명은 제물포항에서 일본우선회사 소속의 ‘현해환’에 승선,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에 일본에 도착했다. 이어 신체검사에 합격한 102명은 1903년 1월 2일 갤릭호를 타고 10일간의 하와이행 태평양 횡단 항해에 올랐다.

 첫 하와이 이민자의 출신지역을 보면 제물포 67명, 부평 10명, 강화와 교동이 9명으로 오늘날의 인천시 지역이 전체 102명 중 86명으로 84%에 달했다. 이민선은 1903년 1월 12일 화요일 자정 호놀룰루항에 도착, 다음 날 새벽 3시30분 검역선창에 정박했는데, 이들 중에도 16명이 전염성 결막염으로 귀국 조처되고 86명만이 입국 허가됐다.

 하와이로의 이민은 미국 정부가 일본인을 대신할 수 있는 노동자로 조선인 도입을 결정하면서 연유했고, 미국 공사 알렌이 고종으로부터 허가를 맡으면서 본격화됐다. 1902년 10월 초 비숍이 한국에 파견되고, 알렌은 그의 비호 아래에 있던 운산금광 경영자 데쉴러에게 하와이 사탕수수농장에 필요한 한국 노동자의 모집과 하와이 이민에 관한 독점권을 부여했다. 데쉴러는 인천의 내동(현 송학동 2가)에 동서개발회사를 설립하면서 이민 업무가 본격화됐다.

 데쉴러는 한국인 직원들을 고용, 각지의 기차역과 교회 등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와 통행이 잦은 거리에서 선전케 했고, 하루 10시간 노동에 매월 미화 15달러의 급료와 거처 및 의료가 무상으로 지원한다는 좋은 조건으로 광고했지만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이때 알렌과 개인적 친분관계에 있던 인천 내리감리교회 존스 목사의 역할이 지대했다. "한국인이 미국에 이민케 된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요,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섭리"임을 설파했기 때문이었다.

 외교관 알렌과 사업가인 데쉴러, 선교사 존스의 적절한 역할이 배합된 결과가 한 달여 만에 121명의 이민 희망자를 모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제1진의 성공적인 하와이 이민 후 데쉴러는 하와이 농장주들이 보내 준 농장과 노동현장을 담은 선전용 사진들을 적절히 활용했다.

 그리하여 1902년 12월부터 1903년 5월까지 6개월 동안에 하와이로 이민 간 한국인은 거의 600명 정도에 달했고, 1905년까지 7천226명에 이르러 이민 사업은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나 한인 이민 숫자가 늘어나면서 하와이에서의 일본인 기득권이 침해당할 우려가 커지게 되자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에 내밀한 압력을 행사, 급기야 1905년 4월 돌연 이민금지령이 내려지게 됐다. 조선의 국권은 이미 일본에 의해 제압당한 상태였다.

 하와이 이민자들의 신분과 직업이 다양했다. 그러나 대부분 농토에서 이탈돼 도시나 개항장으로 유입된 하층민이었고 농민은 7분의 1도 되지 않았다. 그들 모두 조선 사회에서 소외받은 계층이었으나 한인사회가 형성되자마자 오히려 조국이 처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곧 민족독립운동을 전개했다. 그들 속에 내재한 민족애는 국내외에서 전개된 다양한 형태의 독립운동에서 선구적 역할을 담당했던 것이다. 그리고 1954년 4월 20일 인천과 하와이의 첫 자를 딴 ‘인하대학교’가 개교했다. 하와이 한인 5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이승만 대통령의 한인기독학원 토지와 재산을 매각한 15만 달러가 자금이 되어 정부와 국민의 거국적인 지지하에 설립된 것이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2008년 인천시는 월미도에 이민사박물관을 설립했는데 이 역시 한민족 디아스포라의 정신적 귀환을 상징한 것이다.

 해외 이민의 출구가 된 인천은 삼국시대 이래 문물이 유입되는 입구가 된 동시에 출구가 됐던 역사적인 곳이다. 이미 개항 시기에 국제사회를 경험했던 인천으로서는 하와이 그리고 ‘인하’와의 인연이 숙명적이기 때문에, 그곳 동포사회와의 더욱 활발한 문화교류가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국제도시 인천이 세계화로 나아가는 오늘에, 더욱 명실상부한 한민족 공동체 사회 구현의 첫걸음이 돼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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