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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효성 국제펜클럽인천지부 부회장

나이를 먹을수록 세월은 가속으로 점점 빨라진다. 살아온 연식에 비례해 굼뜬 몸과 귀찮음의 게으름을 변명하는 무수한 말들을 무색하게 만드는 세월의 질주다. 감속 절대 없는 가속으로 세월의 속도에 업혀서 부지불식간에 또 한 해가 시작됐고 한 주가 가뿐하게 지나갔다. 새해가 시작되면 올해의 휴일 일수가 며칠이나 되는지 친절한 매스컴은 부록까지 끼워서 안내를 한다. 1월, 새해 첫 달의 휴일은 아쉽게도 신정 1일 단 하루였다. 휴일이 이어질 것 같으면 요일 하나쯤 희생해서 생기는 휴일 날짜를 세어 여행을 계획하게 된다. 일탈에서 쉼을 누리고 오면 덜 각박한 1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란 기대에서다.

 여행 작가 최갑수 님의 글이 생각난다. ‘여행을 생각하고 있는 일월의 오후, 누군가 내 머릿속의 건반을 퉁 하고 누르고 간다. 여행은 솔, 기분 좋은 솔이 이마에 울려 퍼진다.’ 여행을 생각하면 맑고 고운 솔음이다. 그래서 1월의 여행은 또는 여행의 공상은 근거 없는 환상이라 치부해도 쉼이든 성찰이든 위로이면서 위안이라는 말에 심히 공감이 된다. 1은 시작이라 긴장이면서 희망이고 결심이다. 새해 첫 달을 알현할 완벽한 준비로 강박증이 온다. 매년 종무식을 마치고 나면 보잘 것 없는 결과에 의기소침해지면서도 시작하는 새해 1월을 과도한 열정으로 부산하게 맞이한다. 길어야 두어 달이나 넘길까, 거창해서 탄탄했던 계획과 목표가 흐지부지 사그라져도 1월의 당찼던 결심을 그 자체로 숭배한다. 시작이 좋았으니 끝도 좋을 것이란 기대가 거품으로 사그라들지라도 상상이 행복하면 현재가 위안이 될 것이기에.

 수는 쪼개면 쪼개는 대로 더하면 더하는 대로 어느 쪽을 계산해도 무한이다. 불가사의(不可思議)는 나유타(那由他)의 만 배, 무량수(無量數)의 만 분의 일이 되는 수다. 십진급수의 숫자 단위에서 나온 말이지만 크기를 짐작할 수 없다 해 이성적으로나 상식적으로 설명할 수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현상이나 사물을 일컫는 말로 쓰인다. 무한이라 크고 작음을 짐작할 수 없는 우주 단위의 시간 속에서 첫 시작 1월에 불가사의만큼의 의미를 부여하고 현실의 범주 안에서 마음 다잡기를 해 보는 1월의 치기어린 결심을 지켜본다.

 새해에 세운 목표가 있다. 사람들의 신년 목표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다이어트와 운동이다. 매 년 반복하는 결심이고 목표다. 거실 구석에서 옷걸이로 전략한 운동기구가 제 역할을 충실히 하도록 조력자로 열심히 역할을 하겠다는 실천사항을 적어서 운동기구에 붙여놓았다. 조력자라니 운동의 주체가 돼야 하는데 빠져나갈 핑계를 만드는 것 같아 민망했지만 실패의 충격파를 완화할 꼼수일지라도 1월 시작의 실행이 세심해 안도한다. 또 하나는 버리기 비우기다. 공간을 점령하고 있는 물건의 밀도를 낮춰 보자는 것이다. 이것도 내리 3년을 세운 계획인데 초장에는 좀 비워지다가 다시 원상태로 돌아오고 마는 도돌이 목표다.

 정리 전문가의 말에 의하면 가슴 떨림이 없는 물건은 값의 고하를 따지지 말고 버리라고 했다. 못 버리면 비싼 쓰레기더미에서 사는 꼴이라며 1일 1 물건 버리기를 실행한 버리기 가계부를 쓰고 버릴게 없으면 영수증이라도 버리라고 조언한다. 쉽지 않다. 추억이 있어서, 비싸게 구입해서, 살 빼면 잘 어울릴 것 같아서, 언젠가 쓰임이 있을 것이라 믿음에 모셔두게 된다. 물건뿐만이 아니다. 마음 비우기가 더 중요한 목록인 것 같다. 적절한 비우기로 몸도 마음도 가벼워지는 1월을 시작해 본다. 지나고 나서 보면 지극히 평범해지고 말 2019년 1월이 선명하다. 그래도 특별한 시절이 분명해 지금의 1월 초입은 삶에서 의미가 있다고 믿어본다.

 거침없는 질주는 0.1초의 후미도 용납이 어려워 냉혹해진다. 식상한 말 같아도 가벼워져 천천히 풍광을 바라보고 그 풍광 속에 발을 디디며 1월 속으로 걸어가고 싶다. 삼라만상이 동행하는 시간의 속도면 만족할 새 출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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