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범 전 쇼트트랙 국가대표팀 코치로부터 상습 성폭행에 시달렸다는 심석희의 폭로 이후 정부도 긴급 브리핑까지 마련해 관련 대책을 내놨다. 성폭력 가해자 처벌을 한층 강화하고 민간주도 특별조사도 실시하는 등 체육계 성폭력 근절을 위해 칼을 빼 든 것이다. 그러나 체육계의 구조적인 문제에 원인을 둔 성폭력이 뿌리뽑힐 지는 미지수다.

노태강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은 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이번 사건은 그간 정부와 체육계가 마련해왔던 제도와 대책들이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는 것이 증명됐다"고 시인했다.

문체부는 2년 주기로 대한체육회를 통해 아마추어 종목 성폭력 등 폭력 실태를 조사하고 있지만, 조 전 코치 사건은 방송 보도를 보고서야 인지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의 관련 대책엔 영구제명 대상이 되는 성폭력의 범위에 성폭행뿐만 아니라 중대한 성추행도 포함하고 성폭력 징계자의 국내외 취업을 막는 내용 등이 포함됐다. 그간 허술한 규정을 이용해 성폭력으로 징계받은 가해자가 몇 년 후 슬그머니 민간에서 활동을 재개하거나 조 전 코치의 경우처럼 해외 취업을 시도하는 것을 막는다는 의도다.

처벌 강화는 긍정적이지만 체육계 성폭력 근절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폐쇄성’ 등이 극복돼야 한다. 노 차관도 "폐쇄적인 문화를 탈피하는 과정이 힘들고 오래 걸릴 수 있다. 지속적이고 강력한 대책을 마련할 계획이고 스포츠 문화 변화를 위한 교육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엘리트체육을 하는 선수가 대부분인 국내에서는 지도자 눈 밖에 나면 선수생활이 위태롭기 때문에 피해 사실을 폭로하기 쉽지 없다. 설령 불이익을 감수하고 폭로하더라도 징계 주체가 체육단체라 가해자를 잘 아는 인사들이 솜방망이 처벌을 내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정부가 체육계 실태조사를 체육계 인사가 아닌 민간주도로 하고 체육분야 제도 개선에 인권 전문가들을 포함하는 것도 이 문제를 ‘체육계’ 밖에서 해결하겠다는 의지다.

한편, 대한빙상경기연맹 관리위원회는 14일 관리위원회 회의를 열어 조재범 전 코치 성폭행 혐의와 관련해 재발 방지 및 대책 마련 안건을 논의하기로 했다. 연맹은 관리단체로 지정돼 연맹 임원진은 모두 해임됐고 대한체육회가 구성하는 관리위원회가 모든 기능을 대신 운영하고 있다.

연맹 관리위원회는 기존 이사회 격인 관리위원회 회의를 통해 실태 조사와 함께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연합뉴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