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야학의 시초’로 알려진 서둔야학 옛 교실동과 터가 방치<본보 2018년 11월 8일자 18면 보도>되고 있는 가운데 당시 이 학교에서 배출해 낸 첫 졸업생이 서둔야학 설립 과정과 농촌 청년·아동이 서울농대 재학생의 가르침을 받아 향학열을 태운 이야기 등 역사를 담은 자서전 「사랑 하나 그리움 둘」을 출간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책을 출간한 이는 평택여자고등학교 전 교사인 박애란(69)여사다. 그는 1964년부터 2년간 서둔야학을 다녔다. 당시 서둔야학이 1회 졸업생으로 배출한 학생은 박 여사 등 9명이다.

박 여사는 「사랑 하나 그리움 둘」에 야학을 만나기 이전의 삶과 학교에 입학해 배웠던 수업 내용 및 생활상을 담았다. 책은 11일부터 온라인 서점에서 정식 구매가 가능하다.

서둔야학 역사는 1908년 서울농대 전신인 수원고등농림학교 학생들이 서둔리와 고색리에서 농촌 청년들과 아동들에게 산수와 국어 등을 가르친 게 시발점이 됐다. 이후 1928년 조선개척사 조직을 도모하다 일제에 검거돼 잠시 명맥이 끊겼던 서둔야학은 1950년대 서둔동과 웃거리 등에서 간헐적으로 재개됐다.

현재 권선구 탑동 507-1번지에 교사(校舍)가 지어진 건 1965년이다. 당시 서울농대 재학생들이 야학을 세우기로 결심하고 십시일반 모금한 돈은 23만 원이었다. 이 시기 서울농대 한 학기 등록금이 1만 원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거액을 모은 셈이다.

이들은 이렇게 모은 돈을 갖고 계사(닭을 넣어 사육하는 건물)가 있던 부지(165㎡)를 사들여 교실 3개 동을 세웠다. 책에는 당시 준공식에 이병희 국회의원, 서울농대 교수들이 참석했다는 내용도 언급됐다.

야학에서는 서울농대 재학생 10∼20명이 중학교 교육과정을 가르쳤다.

1980년대 초반까지 꾸준히 명맥을 이어오던 서둔야학은 보수공사를 진행하지 못하는 등 열악한 상황에서 수업을 이어나갔지만 1983년 결국 폐쇄됐다.

지금 서둔야학 학교 건물과 부지는 서울농대에 기부채납됐다가 한국자산관리공사로 소유권이 넘어간 상태다. 그런데 관리가 이뤄지지 않아 폐건물로 방치되고 있다.

박 여사는 "교사와 학생이 힘을 합쳐 만든 교실동은 야학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살아있는 증거"라며 "이번 서적 출간을 계기로 옛 서둔야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근현대 문화재로 등록되는 데 보탬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1972년부터 2년간 서둔야학 교장을 맡았던 김기옥(66)서둔야학회장은 "서둔야학 옛 교실동은 교육을 받지 못한 도시빈민들을 상대로 야학 활동이 있었다는 역사적인 상징물로서 보존가치가 있다"며 "수원시는 문화재청에 교실동의 문화재 등록을 강력하게 추천해 근현대 문화유산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박종현 기자 qwg@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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